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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의 게시물 표시

20190701

1. 불쾌, 권태모양이다. , 무감, 체념... 요즘의 내 상태를 이런 단어들로 표현하면 될까. 2. 외가의 문제는 너무나 고질적이고 고약하다. 서로를 보기만 해도 자신의 상처가 떠올라 그런가, 평소엔 자기 삶의 영역에서 멀쩡한 사회인으로 잘 기능하다가도 원가족과 접촉하기만 하면 지나치게 히스테릭해지고 피해망상도 드러난다. 최근에도 엄마-할머니-둘째삼촌-외숙모 간의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그 일주일 전 쯤 외숙모가 느닷없이 내게 누군가를 소개받으라며 연락을 해왔고, 만남에 갈급해있던 나는 거절하기가 아쉬워 엄마와의 유례없는 긴 통화 끝에 절반의 허락(?)을 구한 후 외숙모의 제안을 수락했던 차였다. 1) 나는 나의 부모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버지로서도 어머니로서도 내가 원하는 부모상은 아니었다. 그건 다만 교양이나 사회적 지위나 경제상황에서의 불만족 때문이 아니라, 가치관과 인생관이 다른 데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더구나 내 부모는 애정 없이 결혼하여 살고 있는 사이이다. 다만 두 분 모두 무한 책임감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성실히 가정을 꾸려왔다. 2)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둘째 삼촌네 집에 놀러가면 좋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삼촌은 예민하고 괴팍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 부담스러운 사람이었지만 예쁘고 교양과 지성이 넘치면서도 상냥한 숙모가 좋았다. 내가 꿈꾸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해해주었고 그게 너무 거칠고 순진한 것이라 해도 그 상태에 서 있는 그 나이의 나 자체를 존중해주었다. 날카로운 삼촌도 숙모 앞에서는 좀 부드러운 모습이었고, 둘이 서로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 또 그 사랑을 바탕으로 쌓아온 시간들의 힘이 느껴졌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사촌동생 둘도 내 친언니보다 더 마음을 이끌었다. 꼬물꼬물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봐서이기도 했고, 동생으로서 받은 것 별로 없이 늘 치이기만 했던 나로서는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3) 엄마는 나의 엄마이면서 할머니의 딸이고 숙모의 시누이이다.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인데 엄마의 엄마이...

20190520

1. 일기를 쓰는 주기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새로운 환경과 일상에 적응해간다는 반증일 것이다. 강박적으로 날마다 빠짐없이 일기를 쓸 수는 없겠지만, 바쁜 일과에 매몰되어 자신과 하루를 점검하고 돌아보는 기회는 되도록 자주 갖도록 노력할 일이다. 2. 지난 일요일에는 사촌오빠의 결혼식이 있었다. 내 연애사에서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오빠 친구 M-지금은 유부남이 되었다-을 볼 일이 조금은 신경쓰였는데, 그건 M에 대해 호감이나 미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당시만 해도 여전히 미숙하고 어리기만 했던 내 모습을 보였던 대상이었고, 그래서인지 내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흐지부지 관계를 종결했던 그에게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인 듯했다. 신랑신부를 위한 축사를 낭송하기 위해 무대에 등장한 M의 모습은 살이 많이 쪄 키가 더욱 작아보이는 그저 그런 아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도 이제 웃을 때의 주름을 감출 길 없는 아줌마가 되고도 남았을 나이의 노처녀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것이)기 때문에 아재를 보며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겠으나, 어쨌거나 흘러간 시간들이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회한스럽기도 했다. 3. 사실 일요일에 내 마음을 시리고 허하게 만든 것은 사촌오빠가 아닌 다른 두 남자의 결혼 소식이었다. 하나는 야망이 많고 공부도 잘 해서 결국 한의대에 진학해 한의사가 된 중학교 동창놈이고, 또 하나는 좀 황당하게도 가수 하림. 이상하게도 한동안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잘 들리지 않다가 올해 들어서서 결혼하는 지인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이젠 동성의 친구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쓰라리거나 불안해지지는 않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이성인 지인들의 결혼 소식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가보다, 더구나 그 동창 아이는 나와 그다지 친밀하거나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친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림에 대해서는 아마 나는 그가 영원히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혼자 확신하고 있었나보다. 여기 저기에서 짝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는 소식을 들려주는 것을 보니 지금은 좋은...

20190514

1. 주중의 피로와 주말의 분주함으로 나흘만에 일기를 쓴다. 2. 주말 중 토요일 낮엔 인근에 사는 동교과 발령동기 쌤 둘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개성 강하고 내면이 단단한 그들을 보며 나는 참 흐리멍덩한 색깔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따금 하게 되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인 거지. 3. 일요일에는 언니가 일이 있어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조카를 우리 집에 데려다놓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재잘 조잘 말을 참 잘도 하는 조카를 보며 귀엽기도 하고 이렇게나 빠른 시간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세상에 대해 새삼스러운 걱정도 들었다. 간식 먹이고 밥 해 먹이고 조카가 책 보고 공부하는 동안 나도 틈틈이 내 과제하고 소화시키려고 나가서 좀 걷고 조카가 좋아하는 중고서점에 들러 책 찾아본 게 다였다. 안고 젖을 물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저귀 갈고 씻겨야 하는 것도 아닌데, 엄청 피곤했다. 육아는 자신이 없다. 내 몸뚱아리 하나 데리고 사는 것도 겨우 하고 있다. 4. 어제는 방과후수업을 마치고 상담을 다녀왔다. 번아웃과 슬럼프를 겪고 있는 요즘의 내 상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쌤은 내가 지쳐있는 원인을 아이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보다는 관계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을 구성하는 관계가 다양함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들과의 관계에 치중되어 있었던 (달리 말하면 다른 영역에서의 관계가 전무에 가깝도록 빈곤하다는) 점,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에너지의 균형을 잃는 점 같은 것들 말이다. 토요일에 놀러왔던 부산  출신의 K쌤은 나더러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왔는데, 설명을 듣고보니, 또 상담을 다녀와보니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어쨌거나 번아웃 상...

20190510

기말고사 문제 출제를 끝냈다. 진도를 조정해서 수업에 여유가 생겨 마음이 편해졌다. 본문 외우기 스피드게임을 했다. 교내육상대회라 산만한 반도 있었다. 오늘 유독 여러 아이들이 찾아와 애정표현을 하고 갔다. 이름찾기 숙제를 잘 해 온 아이들이 많았다. 스윙 동호회 K에게 전화가 온 것을 동명이인의 다른 쌤으로부터 연락온 거라 착각했다. K가 난데없이 왜 전화했을까 추측해보다 다른 소식을 기대해보기도 했는데, 전화를 한 건 단순히 버튼이 잘못 눌려진 실수였다. 나의 기대가 부끄럽고 초라했다. 내일의 집들이 준비로 장을 어디까지 봐야 하나 하는 문제에서 일순간 예민했다. 경제적인 사정이 최악인 만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행위였겠으나 한편으론 그런 모습이 좀 부끄러웠다. 그냥 카드를 긁어 평소엔 잘 먹지 않는 딸기와 청포도를 샀다. 마트에서 꼭 사려고 했던 두 가지 라면이 모두 없어서 슬펐다. 진짜 짬뽕은 찾아간 점포에는 없었고, 백세카레면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팔도비빔면을 사갖고 왔다.  운동을 가려고 했으나 몹시 피곤해 포기했다. 요즘은 점심을 먹고 오후만 되면 말할 수 없이 피곤해진다. 간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왼쪽 하복부도 여전히 불편감이 있다. 대학원 과제를 오늘은 하지 못해 그걸 할 생각이었으나, 결국 일기를 먼저 쓰고 있다.

[찬감다행] 20190509

1. 귀찮지만 스스로를 위해 병원에 다녀온 것을 칭 찬 해. 2. 피곤한데도 열심히 수업을 들어보려 애쓰는 귀여운 아이들에게 감 사해. 3. 일단 큰 질병이 있는 게 아니라고 하니 정말로 큰 다 행이야. 4.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행 복하고 충만한 느낌이야. 5. 다정한 마음과 눈빛과 말로 내게 와서 행복을 주는 아이들, 이름을 잊은 졸업생인데도 예전의 좋은 기억들을 말해주는 아이들에게 감 사해.

20190509

한밤중에 또 깼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었는데, 처음엔 윗집의 대화 소리인 줄 알았다가 가만 들어보니 쌍방에서 오가는 게 아닌 다소 속도감 있고 목소리에 힘이 실린 일방적인 독백이었다. 생각해보니 지난 번 낮에도 그런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났는데, 그 때는 그 소리가 인터넷 강의 소리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가 하면서 벽에 귀를 대보았다. 간간이 단어가 들리기도 해서 어떤 분야에 관한 얘기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강의 소리가 아닌 유튜브 같은 콘텐츠로 추측이 되었고 구체적으로는 렌즈 등의 얘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는 카메라 리뷰라든가 언박싱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근데 소리가 너무 힘있고 울려서 영상을 재생시킨 게 아니라 직접 촬영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그 시간이 새벽 2시 전후였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내가 그동안 세상모르고 자느라 알지 못했던 것인지, 이따금씩만 소리를 내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앞으로도 타의에 의한 불면의 밤이 잦아질까봐 약간은 두렵다. 오후에 아이들의 외부봉사활동 때문에 학교가 텅 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꽤나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담임이 아닌데도 아이들로 가득찬 학교는 약간 부담스러운가보다. 시험문제도 내고 수업자료도 모두 세팅해 놓을 요량이었으나, 어제 밤부터 골반과 허리 부근에 불쾌한 통증이 느껴져서 아무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듯해 부득불 병조퇴를 달고 나왔다. 다행히 걱정했던 자궁근종이나 자궁내막 관련 질환은 아니었고, 혹시 몰라서 균 검사와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했다. 내진, 내시경 등을 했더니 진료비가 9만원에 육박. 결과가 무사해 가벼워졌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이렇게 돈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이라니... 결국 오늘 이 시간까지도 대학원 과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일의 우선순위가 있는 법인데, 오늘 괜히 원안 출제에 마음이 쏠려 버리고 만 것이다. 벌충하는 의미로 조금 늦게 자더라도 스타트는 끊어놓아야 겠다는 생각이다.

[찬감다행]20190508

1. 하루를 잘 살아낸 나를 칭 찬 해. 2. 녹록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워내신 부모님께 감 사해. 3. 변형되어 회복되지 않던 쌍꺼풀 라인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어서 참 다 행. 4. 출근길 나뭇잎 사이로 문득 쏟아내려오는 따사로운 봄햇빛이 행 복해. 5. 소진된 자아를 감지하고 회복을 도모할 수 있음을 다 행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해.

20190508

대大권태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를 좀 내버려두고 쉬게 해주면서, 앞으로 직업 환경과 개인적인 영역에서 어떤 패턴의 생활을 해야 소진을 피할 수 있을지 현명한 방법을 탐색하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난 7년 간의 학교 생활에서 지나치게 애써서 그야말로 '불태웠고', 그보다 더더 긴 30여 년의 시간 속에서는 때로는 부모에게 인정받으려, 때로는 내게 주어진 환경을 부정하거나 극복하려, 혹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너무나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다그쳐왔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그 사실을 느끼고 깨달았으니 휴식을 주고 껴안아 품어주고 다독여주며 치유하면 된다.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햇살처럼 따뜻하게. 어버이날을 맞이해 이틀 만에 다시 본가를 방문했다. 지난 주만 해도 한없이 얇아진 주머니 사정 때문에 너무 적은 용돈을 드리게 된 상황이 죄스러워 어버이날이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보니 선물이나 용돈이 어떻든 간에 편안히 맞아주는 부모님과 가족들이어서 다행스러웠다. 독립의 가장 큰 이점은 가족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보다 느긋하고 여유 있는 상태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가끔씩만 만나게 되니 싸울 일이 없고 애틋함이 커지고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피로의 누적 탓인지 본격적으로 노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부쩍 피로를 많이 느낀다. 견딜 수 없이 피곤하고,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가 조금씩 늘 아프다. 최근 며칠은 갑자기 흐트러지고 무너진 쌍꺼풀 라인이 다시 돌아오지 않아 꽤 걱정을 했다. 본가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거의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지금도 이렇게 몸이 늙어가는 게 서러운데 앞으로 죽는 날까지 얼마나 더 서러움이 쌓여갈지, 참 인생은 견디고 감내해야 할 ...

[찬감다행]20190507

1. 아침에 교문지도를 하며 J부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도 못하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려보니 이만큼 성장하고 변화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나의 인생이 문득 기특해 열심히 살아온 걸 칭 찬 해. 2. 신규때에 P부장님처럼 존경스럽고 좋은 선배교사를 만나 지금까지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가끔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 사합니다. 3. 긴 연휴 끝의 수업이라 잘 할 수 있을지 약간 부담과 걱정이 있었는데, 나름대로는 무난하게 수업을 마쳐서 다 행! 4. 모임 중에 엄마가 전화해서 연락이 없어서 걱정되어 전화했다고 말하니 무언가 애틋하게 느껴지며 순간 행 복했음 :) 5. 권태와 슬럼프에 빠져 지쳐있는 스스로를 잘 살피고 휴식을 주려는 생각도 하는 자신이 기특해 칭 찬 해주고 싶다, 굿이야! 멋져! 잘하고 있숴!

20190507

긴 연휴가 끝났다. 4일의 휴가 기간 동안 여러 계획을 세워두었는데, 건강검진만이 온전히 실행에 성공했고, 산부인과 검진과 목욕가기, 푸셩이 만나기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해내지 못했으며, 운동은 절반만 했다. 본가에 가 있는 3일 반의 시간 중에 이틀은 거의 누워지내며 먹고자고 먹고자고를 반복했다.  어찌나 무위도식했는지, 오죽하면 오른쪽 눈의 쌍꺼풀 라인이 무너지고 서너개의 짙은 줄이 생겼다. 독립 3주차에 접어든 시점에 본가에 가보니 역시나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가에 가면 한없이 늘어지고 배고프지 않아도 끊임없이 뭔가를 먹게 되는데, 이건 긴장이 느슨해지고 이완되어 편안히 휴식을 취한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뭔가 공허감을 더 느끼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집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으나, 집에 가보아도 딱히 길게 나눌 얘기가 별로 없고 그나마 나-엄마 혹은 나-아빠 간의 대화가 이루어질 뿐 나-엄마-아빠 삼자가 원활히 오가는 대화란 건 전무하다. 요즘 온갖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지겨운 '인생권태기'이기 때문에 본가에서의 그런 모습이 더더욱 우울하고 공허하게 인식되어 울적했다. H의 툭툭 던져오는 발랄한 질문들이 -속좁게도- 철없는 부잣집 공주님처럼만 느껴져 답하기 싫어졌다. 예를 들어 본가에 가니 좋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속으로 울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독립해 나온 집에서도 따뜻함이나 충만함을 느낄 수 없고,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가더라도 소속감이나 포근함을 느끼지 못해, 어디에서나 이방인 신세인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부모와 내게 주어진 세계를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니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애쓰며 산다. 내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지어나가보려고 독립해 나온 이 곳에서 또다른 외로움과 공허, 고독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것 역시 내게 주어진 과제이자 숙명이라 생각하고 내 일상과 잘 섞고 배합해 예쁘게 빚어보려 한다. 연휴 끝의 출근이 괴로웠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세 시간 뿐이었던 화요일 수업...

[찬감다행] 20190502

1. 정보공시, 수련활동 잔류학생 지도계획 등 밀려있던 업무를 차근 차근 잘 해낸 나를 칭 찬 해. 2. 집들이에 온다고 과분한 선물을 준비해 온 쌤들과 그것보다 더 애정하게 되는 정성 어린 손편지에 감 사해. 3. 나름 귀하게 자란 쌤들이 누추한 집을 보고 좀 불편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좋다고 말해주고 나름대로 편안하게 있다가 간 것 같아 참 다 행이야. 4. 재작년 졸업생 M양이 정말로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 안부를 물었는데, 잊지 않고 연락해주는 학생들이 있어서 행 복해. 5. 영상수업이 거의 마무리되고 오늘 오랜만에 교과서 수업을 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무난하게 수업이 이루어져서 다 행이야.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찬감다행] 20190501

1. 출근하자마자 믹스커피 마시던 걸 고치고 싶었는데, 오늘 잘 참아낸 걸 칭 찬 해. 언젠가는 믹스 커피를 한 잔도 안마시는 날들이 많아질 거라고 믿어. 2. 학교에 S교무행정사 쌤처럼 유능하고 적극적이고 마음 넓은 분이 있어서 업무를 수월하게 할 수 있음이 너무 감 사해. 3. L과학정보부장님의 자녀분이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큰 불행을 지나오신 그 분에게 또 다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올까봐 너무나 불안하고 걱정했는데, 크게 다친 것은 아니라고 하니 정말로 너무나 너무나 다 행이야 ㅜㅜ 4. 임준걸의 멋진 목소리로 좋은 노래를 들을 때 행 복감에 젖어. 5. 배고플 때 교무실 냉장고에 요기할 수 있는 맛있는 것들이 있어서 다 행이고 감 사해.

20190501

5월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4월은 늘 뜻하지 않게 잔인했고 미칠 것 같은 분홍빛과 세계를 삼킬 것 같은 회색이 뒤섞여 묘한 불안정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다. 월요일의 상담 이후로 (사실 그 전에도 이따금)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대상들은 왜 모두 남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멋지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여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교감이라든가, 학창시절의 여러 선생님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대상까지는 결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을 대리하고 위안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업도 영상으로 대체한 주제에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방과후수업도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의 집들이를 위해 청소할 일도 문득 귀찮게 느껴졌지만, 힘을 내어 오늘도 내 일상을 열심히 마무리했다. 언젠가 이 공간과 이 공간 속에 혼자 있는 나의 일상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면, 충분히 이완하고 늘어지는 날도 오겠지.

[찬감다행] 20190430

1. 학급운영에 대해서 멋진 자료를 공유하고 열심히 준비해 발표한 것을 칭 찬 해, 수고하고 고생했어! 2. 중봄에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신 걸 감 사해. 3. 독립 생활의 이러저러한 면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 행이야. 4.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고 행 복했어. 5. 아침에 교문지도 하는 날임에도 미리 가서 공부하고,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은데도 운동과 일기를 거르지 않은 나를 많이 많이 칭 찬 하고 격려해.

20190430

4월의 마지막 날. 내가 그토록 담임을 쉬고 싶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내어줄 것 없이 고갈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찌꺼기를 비워내고 그 안에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 다시 나눠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담임을 쉬고 소속감 없이 아이들과 거리를 두는 생활을 하다보니 나의 존재의미가 다소 희미해지면서 접촉 불량인 충전기처럼 끝내 완충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지쳐있는 나의 정서 상태로는 아이들을 예전처럼 가까이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만나게 되지도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태. 나를 채우는 방법을 고민해 볼 일이다. 중봄 두 번째 연수가 있었고 '교사와 학생이 행복한 학급운영'이라는 주제로 내가 발표를 하게 되어 있었다. 7년 간 담임을 하며 갖고 있던 자료를 알록달록 편집하고 발표할 내용도 자료에 메모해가며 나름의 준비를 해 갔는데, 예상보다는 내게 주어진 임무가 그다지 막중한 것이 아니어서 결과적으로 준비해 간 자료가 좀 과해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큰 줄기의 얘기 위주로 나의 경험과 생각을 발표했는데, 옆자리 Y쌤이 나의 담임 자료가 대단하다면서도 옆반 담임이 힘들었겠다는 얘기를 사족처럼 붙여, 끝내 마음이 또 쓰이고 말았다. 한동안 누구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는데, 요즘은 교장 눈치, 교감 눈치, 다른 동료 교사 눈치, 애들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다.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건지, 심리적으로 허약해져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몇 가지를 사러 학교 근처의 생활용품 상점으로 갔는데, 사려고 했던 도마꽂이와 티스푼 외에도 러그를 세일해 팔길래 결국 또 사오고 말았다. 집에 오자마자 침대 옆에 깔아보니 방바닥에 비해 러그의 사이즈가 너무 작아 볼품없고 우스워보였다. 약간 들뜨고 침착하지 못한 상태로 했던 쇼핑의 여파인지 부엌에 도마꽂이를 두려고 뭘 건드리다가 엄지 손톱 옆이 길게 베였다. 긴 시간의 지혈이 필요할 정도로 피가 꽤 많이 나왔는데, 혼자 살아서 그런가 크게 다친...

[찬감다행] 20190429

1.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조카도 잘 챙기는 착한 규 칭 찬 해. 2. 이번 어버이날에는 용돈을 많이 드릴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에 너무나 대수롭지 않아하며 안도하라는 듯 다독여 준 엄마와 늘 딸 걱정을 해주는 아빠에게 감 사해. 3. 조카가 어린이날 선물로 무엇을 원하냐고 했을 때 이모의 얇아진 주머니 사정을 알아서 그러는지 '고장 잘 안나는 샤프와 샤프심'을 얘기해주어 다 행스러우면서 안도함. 조카님, 재정 상태가 회복이 되고 나면 이모가 맛있는 거 사줄게~ 4. 네스프레소에서 앱 결제 시의 오류로 인해 불편을 겪었겠다며 한정판 캡슐 10개를 서비스로 보내주어서 감 사하고, 이렇게까지 친절하고 철저한 기업이 있어서 좋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행 복한 일이야.

20190429

1. 한 주의 시작. 중간고사 후 첫 차시인 반들이 많이 남아 영화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심적 부담이 좀 덜하다. 1교시에 영화를 보여주고 돌아왔는데 전교사에게 보내는 교장의 메시지가 와 있다. 영상수업 시에 교육적인 목표와 철저한 계획에 의해 엄선된 영상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아마도 지난 주에 하필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때에 교장이 창을 통해 교실을 뻔히 한참동안 들여다봤다며 크게 걱정하던 영어과 신규 막내쌤이 교장이 훈화를 한 직접적 계기였겠으나, 농땡이 피우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수업을 하는 교사가 나 말고도 여럿 있으니 굳이 전체에게 그런 메시지를 보냈겠다 싶었다. 기분이 나빴던 것은 글의 도입에 괜시리 아이들과 즐겁게 활동하는 열정적인 수업을 펼치는 '고경력 교사'를 콕 짚어 언급했다는 점이다. 분명 영상수업 하는 (젊고 열정도 없는) 교사들과 대조하고자 하는 그 의도를 그런 식으로 표출해대다니 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요일까지는 영상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데, 교과에 적합하고 목적에 부합하고 내용도 유의미해 스스로 당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꽤 신경이 쓰인다. 2. 생리 3일째인데, 양이 좀 많다. 어젯밤에는 자려고 누웠다가 왈칵거리는 게 심상치 않아보이고 짧게 누운 틈에도 생리혈이 새어나오는 걸 보고 기겁해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편의점에 가서 오버나이트를 사왔다. 30대 중반도 지난 나이가 되고 보니, 건강 염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장수에 대해서는 욕망하기는커녕 차라리 재난이라 생각하면서도, 사는 동안은 (재정적, 육체적 고통이 없도록) 건강하게 살다가 잠든 듯 깔끔하고 산뜻하게 떠나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형편없는 체력과 무방비하고 보잘 것 없는 몸덩어리를 이끌고 계속 살아가야 할텐데, 늙는다는 건 어떻고 저떻고 해도 역시나 슬픈 일이다. 3. 상담 Y쌤은 독립 후 보름이 지난 나의 근황에 대해서 듣고는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업들을 좀 해볼 것을 권했다. 목공, 그림, 베이킹 같은 것...

[찬감다행] 20190428

1. 1시간 20분이나 밖에 나가서 운동하고 온 나 자신을 칭 찬 해. 2.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집안일도 많이 많이 한 걸 또 칭 찬 해. 3. 큰 마음을 나눠주는 세라 생각이 갑자기 많이 났는데, 그런 큰 사랑을 베풀어주는 친구가 있음에 감 사해. 나를 아껴주고 걱정하고 안타까워 해주는 영준언니에게도 감 사해. 4. 본가와 병원에 가려는 계획 때문에 아프로디테 모임의 집들이 날짜를 변경하려고 했는데 쌤들이 모두 변경이 가능하고 흔쾌히 그러겠다 해줘서 참 다 행이야. 5. 행복을 늘 느낄 수는 없는 거겠지만, 행복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고 행복력을 키워가려고 하는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 복이라고 생각해.

20190428

주말이 끝나간다.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내게 주말은 좀 난감한 시간인데 더구나 난 할매처럼 아침 잠이 많지 않아 이 긴 하루를 또 어찌해야 하나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행동 개시. 빨래를 개고 우아하게 커피를 내려 마시고 책도 좀 읽고 티비도 좀 보고 백만 년 만에 중국어 공부도 좀 하고 짜장라면을 끓여 아점을 해결하고 다시 설거지를 하고 유한락스로 칠갑을 한 후 욕실 청소를 하고 몇 벌의 옷과 면생리대를 표백했다. (이제 보니 보랏빛 맨투맨 티에 락스가 튀었는지 분홍색 점이 생겨서 몹시 속상...) 그래도 아직 한낮이라 밖에 나갔다. 이 동네에도 산책할 만한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중에 중랑천 생각이 났다. 끝자락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니 중랑천으로 통하는 길이 보였고 그 곳엔 참 많은 사람이 나와 걷고 뛰고 얘기하고 있었다. 날이 좀 쨍하면 내 기분도 햇빛에 말릴 수 있어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내내 다소 흐렸다. 음악을 들으며, 우아하게 타 간 아아를 홀짝이며, 그렇게 걸을 때 순간 순간 좀 처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슬펐는데, 그래서 걷지 않고 뛰어보기로 했다. 러닝머신 위가 아닌 곳에서 뛴 게 참으로 오래 전 일이라 그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뛰고 뛰다보면 기분이 반드시 나아지고 새 에너지가 생기리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강한 믿음도 있었다. 10분 여를 뛰고나니 역시나 땀이 슬며시 배어나오며 기분이 좀 나아졌다. 돌아와서는 청소를 하고 티비를 보고 저녁을 해 먹고 설거지를 했다. 욕실 세면대 바로 위에 선반이 없어서 칫솔과 양치컵, 세안용품 등을 둘 수 있는 흡착식 간이 선반을 사서 (처음 내가 했을 때 자꾸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아빠의 손을 빌려 붙여두었는데, 그게 낮에 욕실 물청소를 하며 떨어져버렸다.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해봐도 한 쪽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다. 굳은 마음을 먹고 반드시 해결하리라 하는 오기를 갖고서 결국 튼튼해 보이도록 붙이기는 했다. 삶이란 이 흡착식 간이 선반 같다. 안정감 있게 원하는 곳에 튼튼하게...

[찬감다행]20190427

1. 좀 귀찮았지만 헬스장에 새로 등록하고 아침에 운동을 다녀왔다. 역시 알차게 인생과 일상을 꾸려나가는 규, 칭 찬 해~ 2. 어젯밤에 네스프레소 캡슐을 주문하다가 어플에 오류가 발생해서 주말에도 전화를 받을까 걱정하며 전화를 해보니 직원이 너무도 친절하게 안내하고 응대해주어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나 친절하고 세심하게 고객을 응대해주니 감 사한 일이다. 3. 며칠 전부터 생리를 할 기미만 보이고 제대로 생리가 시작되지 않아 다소 짜증스럽고 걱정이 됐었다. 두 방울 흐르고 결국 하지 않았던 것도 이틀이나 되어서 더더욱 걱정스러웠는데, 양이 많지는 않지만 오늘 드디어 제대로 생리가 시작되어 안도되고 다 행이라고 생각되었다. 4. 오냥이 집에 놀러 왔는데, 예쁜 화분과 필요했던 소형 스탠드를 선물로 사다주고, 백화점을 같이 구경하다가는 무인양품의 예쁘고 부드러운 노트까지 사주어서 참 감 사했다. 5. 행복은 찰나의 순간에 반짝 모습을 드러내므로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잘 바라보고 잡아야 한다. 운동하러 가는 길의 따사로운 햇살과 길가에 피어난 화사한 꽃, 러닝머신 위에서 송글송글 돋아나던 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다정한 바람 속에 순간의 행 복이 있었다.

20190427

요즘의 나는 슬럼프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한 해 동안의 모든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했어야 하는 1월에는 여행을 준비하고 신경 쓰이는 동행과의 피로 섞인 여행을 하느라 오히려 긴장이 쌓였고, 2월 역시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바로 새 학년도 학교 업무를 준비하느라 학기 중보다 더 많은 업무를 하고 심지어 중간엔 졸도까지 했다. 새 학기에 들어선 3월에는 날마다 12시간 넘게 일하고 사위가 어두워질 때 퇴근하기 일쑤였고, 업무가 안정을 찾아 야근이 줄어들자 독립과 이사 준비로 마음이 불안정하고 정신이 사나웠다. 그 모든 여파가 추위가 완전히 누그러든 이제서야 몸으로 나타나는가보다 했는데, 신체만 피로한 것이 아니라 그저 모든 것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날마다 씻고 옷을 챙겨 입고 화장을 해 출근하는 일도, (올해는 귀엽고 애교 많은 아이들 임에도)  학생들 앞에서 해내고 있는 내 수업도 지루하기 그지없다. 업무를 샥샥 처리하며 그 속에서 존재감과 희열감을 느낀 적도 많은데 요즘은 일도 너무나 하기 싫다. 그렇다고 놀고 싶은 것도 아니다. 중간고사 직후라 수업 시간에 영화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그마저도 견딜 수 없이 지겹고, 봄빛이 가득하고 날씨가 좋은 이 계절에도 놀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동하지 않는다. 뭔가 기대되거나 흥분되거나 설레거나 기쁘거나 즐거운 일이 없다. 내 얼굴도 타인의 말도 이 세상 모든 것이 권태롭다. 올해는 업무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고, 독립과 이사, 대학원 진학 역시 너무나 새로운 일임에도 나에게 큰 자극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모든 것이 하기 싫고 지루하다. 삶이 언제나 즐거울 수만도 없겠지만, 그리고 돌아보면 나의 4월은 언제나 분홍빛이 섞인 결국엔 회색인 경우가 많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삶에의 권태가 그리 길지는 않았으면 한다. 생기 돋고 유쾌한 나날들을 보내고 싶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고 싶다.

[찬감다행]20190425

1.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밥을 잘 챙겨먹고 꼼꼼히 설거지를 하고 산책 겸 책을 사러 서점에 다녀오고 조금 귀찮아도 샤워를 하고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글을 쓰며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스스로를 매우 칭 찬 해, 대견해, 잘 하고 있어! 2. 다정한 표정과 말투로 따뜻한 느낌을 주시는 전문희쌤과 잠깐이라도 만나면 기분이 좋아서 감 사하다. 덕분에 동아리 활동 마무리도 가현이가 도와주어서 귀찮을 일이 줄게 된 것 역시 감사. 나도 타인에게 그런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3. 정태영쌤 아들 결혼식에 결국 가지 않기로 하고 김춘정쌤에게 축의금을 부탁했는데, 흔쾌히 전달해주시겠다고 답이 와서 감 사하다. 4. 어제까지는 다음 달까지의 생활비(현금)가 간당간당 경계에 있어서 많이 불안했는데, 어제 목요회 모임에서의 카드깡 이후에 한숨을 돌리게 되어서 참으로 다 행이다. 5. 네스프레소로 내린 커피와 함께 먹으려고 엘리제 제과점에서 30% 세일해 파는 앙버터를 사왔는데, 저녁을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시간도 늦어져 커피도 못 마시고 앙버터는 한 조각 맛만 봤지만, 내일이라도 다시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가 주는 소소한 행 복이 있다. 세상에 날 위로해주는 여러 음악과 맛있는 음식과 좋은 풍경들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20190425

맨 꼭대기 층에 있는 본가에서 지낼 때는 모르던 층간소음을 겪는다. 집에 있는 내내 시달려 괴로울 정도의 빈도나 강도는 아닌데 위층에 사는 분들이 노인인지 꽤 이른 꼭두새벽부터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대개는 새벽 다섯 시가 넘으면 드나드는 발소리, 오줌 누는 소리와 물 내리는 소리, 뭔가를 쿵쿵대며 찧고 빻는 소리(정체를 알 수 없다) 같은 것들인데, 내가 꽤 오랫동안 겪지 않았던 일이라 낯설어 그렇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생활소음은 익숙한 일일 거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길지 않은 수면시간이 조금 더 짧아지는 날도 있다. 새벽잠을 푹 못 잔 데다가 꾸물꾸물 흐린 날씨까지 겹쳐 오늘은 병든 닭마냥 기운이 없고 노곤노곤했다. 억지로 기말고사 문제 8개를 출제했고, 간신히 시간을 때워 퇴근하려는 찰나, 한문과의 중대한 실수를 알게 됐다. 전혀 다른 교과여도 같은 교과군으로 묶여 있고 그 교과군의 부장을 내가 맡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에 대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평가계획이 (또다시) 변경된다면 그에 따라 수정해야 하는 파일이 4-5종류나 되고, 이미 마감한 1차 정보공시도 정정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내년엔 창체 요일 이동 등 학사일정을 바꾸자는 의견도 많고, 평가 비율 산출 방식도 변경시켜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으므로, 자연스레 내년의 나에게도 업무적인 어려움과 번거로움이 많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내년의 업무 걱정이나 더 이후의 담임을 맡을 일에 대한 걱정이 불쑥 불쑥 올라오기는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의식의 저편으로 밀어놓고 만다. 집에 와 두 시간 가까이를 정신 없이 잤다.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을 많이 해치웠다), 노원역 알라딘에 가 책 두 권을 사왔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청년의 목소리가 청아하고 말하는 모양이 참 가지런해 기분이 잠시 좋았다. 서점이라는 곳이 주는 분위기 내지는 이미지와 청년의 목소리, 흘러나오는 재즈...

[찬감다행]20190424

1. 마음이 헛헛해도 꿋꿋하고 의연하게 하루를 잘 마무리하려는 스스로가 대견하고 칭 찬 해! 2. 불편할 수도 있는데 나를 어색해하지 않고 모임에 껴준 여러 쌤들에게 감 사하다, 놀아줘서 고마워요 쌤들 ㅜ.ㅜ 3. 시험감독을 하면서 별다른 큰 일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다 행스럽다. 4. 담임으로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쌤들을 보며, 잠시 숨을 돌려 쉬어갈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이 행 복하고 이걸 잘 만끽해야겠다고 생각했음. 5. 아빠가 오전에 집에 와서 커튼을 달아주고 가셨다. 벽에 나무 부분이 없고 온통 시멘트 콘크리트라서 못이 잘 박히지 않아 본드로 고정해 겨우 설치하며 고생하셨다고 들었는데, 속썩이는 막내딸을 위해 늘 애쓰고 모든 것을 해주려 하시는 아빠에게 감 사하다.

20190424

나보다 다섯 살이 어린 6년차 유부남 쌤이 결성(?)한,  작년 신규 셋과 올해 신규 다섯, 그리고 8년차 늙다리 나까지를 그 구성원으로 하는  'ㅈㅇ목요회'가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던 오늘 모임을 갖기로 했다. 사실 어제부터 내가 그 자리에 끼어 앉아 있어도 괜찮을까, 눈치 없는 짓은 아닐까 약간의 고민을 했다. 애매한 포지션이다. 30대 후반의 미혼 여교사로서, 학교에 일단 또래 쌤이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있다손 치더라도 가정에 몰두하고 육아에 치이느라 바쁜 경우가 많다. 나처럼 미혼인 경우에는 같은 세대로 묶이기에 애매한 90년대생 20대들이다. 사생활에 대해 꼬치 꼬치 캐묻고 오지랖 넓게 대리 걱정을 해주는 것이 민폐이자 무례라는 것을 모르는 어른들도 이제 내게 연애나 결혼에 대해 잘 묻지 않는데, 옆의 20대 쌤에게는 묻는 것을 나에게 묻지 않을 때에 참 애매하고 묘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그런 걸 묻는 게 딱히 유쾌한 일도 아닌데 말이다. 열 명이나 모이다보니 학교 얘기,  동료 얘기, 아이들 얘기가 뒤섞이다가 결국은 오늘도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슈가 등장했다. 9명 중 2명은 기혼, 1명은 비혼주의자, 3명은 목하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 중에다 2-3년 내에 결혼이 현실화될 예정, 3명은 연애를 쉬고 있거나 사생활을 딱히 밝히지 않았으나 모두 매우 어리다. 특히나 곧 결혼을 목표로 하고 있는 쌤들의 얘기를 들으면서는 나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빈 집에 들어오는 오늘의 마음도 또 헛헛하다. 다음 달 월급날까지의 예상 지출비를 계산하고, 복지포인트 청구를 놓쳐 계산에 어긋난 걸 알고 전전긍긍하느라 지친 하루가 초라하다. 이 와중에 아프로디테 쌤, 정확히는 영어과 김쌤이 또 다시 나는 모르는 전임교 얘기를 단톡방에 마구 해대니 짜증도 난다. 그렇지만 마음을 다스려본다. 내게 주어진 하루와 상황과 삶을 잘 받아들이고 가꿔나가야 하니까. 다독다독, 토닥토닥.

[찬감다행]20190423

1. 오늘 2교시 시감때 OMR카드 교체하는 아이, 서술형 답안지 교체하는 아이, 화장실 가겠다는 아이, 옆줄에 앉은 친구를 괜히 부르는 아이 등등이 많아 참 어렵고 긴장되는 시감이었는데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 해낸 것을 칭 찬 해~ 2. 엄마의 대장내시경 결과가 나오는 날. 혹시나 해서 몹시 걱정하고 불안해 했는데 별 이상이 없다고 하니 너무너무 감 사하다. 3. 집주인에게 보일러가 새서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일이 왠지 좀 부담스러웠는데, 통화를 해보니 흔쾌히 얘기를 들어주고 살펴보고 고쳐주겠다고 답을 했다. 너무나 다 행스럽다. 4. 사촌오빠가 고가의 커피머신을 독립선물로 사서 보내주었다. 본인의 결혼 준비만으로도 신경 쓸 게 많고 스트레스가 클 텐데, 이런 과분한 선물을 보내주니 정말로 감 사하다. 5. 맘에 드는 테이블보를 사고, 향기로운 방향제로 집의 냄새를 잡고, 배송되어 온 책장 위에 사촌 오빠가 선물해 준 커피머신까지 세팅해 점점 더 내가 원하는 집의 모습이 되어가니 행 복하다. 6. 아이들이 시험을 잘 봤다며 행복한 표정으로 내게 조잘조잘 자랑하는 모습을 보니 참 귀엽고, 학교에서 예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행 복하다.

20190423

독립이 무산되고, 주어진 현실을 감내하며 하루하루 살아내다보니 이 곳을 잊고 지냈다. 2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새로운 곳에 터를 잡고 따로 나와 살게 됐고, 이제 혼자 지낸 지 열흘쯤 되어간다. 노트북 바탕화면을 정리하다가 바로가기 되어 있는 이 곳을 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이 곳에 글을 끄적이면서도 참 문장을 꾸며대기 좋아해 질박하거나 담백하지 못하다는 불만이 있었는데, 오늘 다시 읽어본 옛 글들이 새삼 좋게 느껴진다. 이사를 하고 새로운 가구를 들이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검색하고 구입하는 동안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을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주말에 지방에 1박2일의 여정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밤9시가 넘어 빈 집에 들어오니 무섭도록 외롭고 고독한 현실이 날카로운 칼끝처럼 온 몸과 영혼까지 찔러왔다. 이틀 간 약 6만 보를 걸었고 다음 날 출근을 앞두고 있음에도 두 시간을 채 자지 못했다. 그러지 않아도 염세로 점철된 인간인데 빈집에 혼자 와 있으니 헛헛함이 두 배로 자라나 허무하기 그지없다. 다시 또 미비한 물건들을 사고 집을 조금 더 집답게 꾸며보려 애쓰고 부지런히 쓸고 닦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면 잠시나마 허무함이 저만큼 밀려나있다가도, 침대에 몸을 뉘이면 회색빛 두려움과 막막함이 사위를 뒤덮는다. 그래도, 잊지 않기로 한다, 왜 그토록 가족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독립하고 싶어했는지를. 적응에는 또 다시 품이 들겠지만 내게 가져다주는 좋은 점들이 있을 것이다. 또, 사람은 결국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쓴다. 힘들고 어두워질 때 쓰는 감사행복다행(?)일기를 쓸 것이다. 매일 나를 위해 얼마간의 시간을 들여 내 하루와 내 마음을 들여다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