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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5

맨 꼭대기 층에 있는 본가에서 지낼 때는 모르던 층간소음을 겪는다. 집에 있는 내내 시달려 괴로울 정도의 빈도나 강도는 아닌데 위층에 사는 분들이 노인인지 꽤 이른 꼭두새벽부터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대개는 새벽 다섯 시가 넘으면 드나드는 발소리, 오줌 누는 소리와 물 내리는 소리, 뭔가를 쿵쿵대며 찧고 빻는 소리(정체를 알 수 없다) 같은 것들인데, 내가 꽤 오랫동안 겪지 않았던 일이라 낯설어 그렇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생활소음은 익숙한 일일 거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길지 않은 수면시간이 조금 더 짧아지는 날도 있다.

새벽잠을 푹 못 잔 데다가 꾸물꾸물 흐린 날씨까지 겹쳐 오늘은 병든 닭마냥 기운이 없고 노곤노곤했다. 억지로 기말고사 문제 8개를 출제했고, 간신히 시간을 때워 퇴근하려는 찰나, 한문과의 중대한 실수를 알게 됐다. 전혀 다른 교과여도 같은 교과군으로 묶여 있고 그 교과군의 부장을 내가 맡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에 대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평가계획이 (또다시) 변경된다면 그에 따라 수정해야 하는 파일이 4-5종류나 되고, 이미 마감한 1차 정보공시도 정정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내년엔 창체 요일 이동 등 학사일정을 바꾸자는 의견도 많고, 평가 비율 산출 방식도 변경시켜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으므로, 자연스레 내년의 나에게도 업무적인 어려움과 번거로움이 많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내년의 업무 걱정이나 더 이후의 담임을 맡을 일에 대한 걱정이 불쑥 불쑥 올라오기는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의식의 저편으로 밀어놓고 만다.

집에 와 두 시간 가까이를 정신 없이 잤다.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을 많이 해치웠다), 노원역 알라딘에 가 책 두 권을 사왔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청년의 목소리가 청아하고 말하는 모양이 참 가지런해 기분이 잠시 좋았다. 서점이라는 곳이 주는 분위기 내지는 이미지와 청년의 목소리, 흘러나오는 재즈곡이 잘 어우러져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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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1

5월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4월은 늘 뜻하지 않게 잔인했고 미칠 것 같은 분홍빛과 세계를 삼킬 것 같은 회색이 뒤섞여 묘한 불안정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다. 월요일의 상담 이후로 (사실 그 전에도 이따금)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대상들은 왜 모두 남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멋지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여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교감이라든가, 학창시절의 여러 선생님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대상까지는 결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을 대리하고 위안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업도 영상으로 대체한 주제에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방과후수업도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의 집들이를 위해 청소할 일도 문득 귀찮게 느껴졌지만, 힘을 내어 오늘도 내 일상을 열심히 마무리했다. 언젠가 이 공간과 이 공간 속에 혼자 있는 나의 일상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면, 충분히 이완하고 늘어지는 날도 오겠지.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찬감다행] 20190430

1. 학급운영에 대해서 멋진 자료를 공유하고 열심히 준비해 발표한 것을 칭 찬 해, 수고하고 고생했어! 2. 중봄에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신 걸 감 사해. 3. 독립 생활의 이러저러한 면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 행이야. 4.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고 행 복했어. 5. 아침에 교문지도 하는 날임에도 미리 가서 공부하고,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은데도 운동과 일기를 거르지 않은 나를 많이 많이 칭 찬 하고 격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