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김선생의 연애 개시 소식을 듣고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쓴다.

1. 김선생의 고사원안을 검토해주며 얘기하다 최근에 교제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며칠 전 바뀐 그의 프사를 보고 느낌이 심상치 않았는데 내가 감이 좋아서일까, 그런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 순간 쿵 했다.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이 결혼을 알려오는 순간을 약 10년간 수없이 많이 겪어왔고, 이젠 그런 것에 무뎌질 때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실제로 그런 소식들에 무감한 때가 더 많기도 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결혼이 아니라 연애일 뿐인데도!)

2. 떠오른 건 김선생의 예쁨, 여성스러움 뭐 그런 것들이었다. 여성스럽고, 가냘프고, 드세지 않아 보이고, 분위기도 있고, 도도하고, 보호해주고 싶은 그런... 남자들이 아주 선호할 만한 것들을 갖추고 있는 김선생. 그와 알고 지낸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중에서도 꽤 가깝게 지내며 자주 만났던 시기엔 내심 그와 나의 외모(를 비롯한 자아내는 분위기)를 비교하며 자기비하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3. 그런 비교의 마음이 다시 강렬하게 떠오르자 그게 너무 아팠고, 그런 아픔은 꽤 오래된 것이었다는 게 분명히 느껴졌다. 중학생 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나는 매력적이고 인기가 많아 늘 중심에 서 있는 대상과 내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했던 것 같다. 꼬마 때 동네 오빠들 사이에서, 남녀공학 중학교의 학급 안에서... 객관적으로는 내 자신이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성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에서만큼은 위축되고 자신이 없었다. 나이가 들며 그런 것에 대해 집중하는 일이 줄어들고 가치를 두는 영역이 좀 달라지면서 그런 기억들이 희미해졌다. 그래서 그런 기억들은 어렸던 한 때에 스쳐지나가는 것들이라 생각했나보다. 괜찮다고, 괜찮아졌다고 여기며 살다가 크게 뒤통수 한 방을 얻어맞고 무너져내리는 심정. 

4.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여러가지 기억들이 삐죽빼죽 솟아올랐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서 좀 가깝게 지내던 예쁘고 똑부러지고 욕심도 많고 공부도 잘하던 친구. 나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 자라온 배경이나 당시의 심리적 상태가 달랐고, 따라서 그 때 미래를 바라보고 준비하는 시각 자체가 판이했다. 입시 전략이라는 세계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교사가 되기를 꿈꾸며 우직하게 들입다 공부만 했지만, 그 친구를 비롯한 여러 학우들은 당시 8학군의 분위기에 걸맞게 학업에 애쓰면서도 여러 입시전략, 정보, 컨설팅 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5명까지 추천해주는 서울대 수시를 쓰고 싶어했고, 그 수시를 준비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내게 하소연하는 일이 많았다. 나는 성실하게 그 얘기를 들어주며 열심히 친구를 위로했다. 우는 친구에게 넌 잘 해낼 거라고 다독이면서. 결국 그 친구는 서울대에 합격했고, 나는 내신이 아주 좋은 편이었으면서도 엉뚱하게 내신은 전혀 반영하지 않는 수능점수 특차로 성적에 한참 남아도는 그저그런 '인서울'대에 입학했다. 그 꼴이 엄청 우스웠고 이런 게 한 두번도 아니었는데. 누가 누굴 위로하고 다독여야 하는지, 뭔가 이상한 이런 일들이. 

5. 왜냐하면 불과 2주 전에 김선생을 만났을 때도 그랬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김선생은 부쩍 본인의 나이와 결혼, 미래 이런 것들에 대해 많이 불안해하고 우울해했다. 연애, 결혼 따위에 초탈한 듯한 태도로 나는 김선생의 얘기를 들어줬다. 최근에도 부모님의 강요에 못이겨 소개팅을 여러 차례 했으나 도무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두세 번은 만나보라는 조언도 해줬다, 심지어(최악이네). 그런 얘기를 나눌 때면 나는 내심 소개팅 같은 것으론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하는 나처럼 김선생 역시 누굴 만나게 되기가 쉽지 않으니, 우린 같이 참 어렵겠구나 했다. 나는 그래도 결혼이나 출산에 집착하지 않으니 좀 낫지만 김선생은 그렇지 않으니 괴롭겠다 하면서. 

6. 그런 웃긴 조언과 나 혼자만의 생각들이 있었는데, 13일 사이에 김선생에게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니. 그 사이 연락이 뜸하기도 했다. 주말 낮에 유명한 카페의 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한밤이나 되어서야 답이 왔다. 뭔가 늘 대답이 싱겁고 짧은 느낌적인 느낌. 그 사이에 김선생에게는 여러 일들이 있었겠지. 나는 얼마나 우스운가. 늘 얌체처럼 도도하고 고고하고 끝내는 잘난 그들을 초라하고 바보같은 내가 보살피고 위로하는 꼴이라니.

7. 그러고보니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사랑을 주고 받는 의미있는 대상이 아주 간절히 필요했고, 그게 나의 주요 이슈였다. 올해 코로나로 정신없고 바쁜 일상 때문인지 그런 것들이 좀 희미해졌었다. 그래서 아, 나이들면서 그런 욕구들도 사그라드는 모양이구나 하며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여전히 내게도 사랑받고 싶은, 그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내 존재를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다 던지고 싶은 그런 욕구가 깊이 내재돼있나보다. 잊고 있던 욕구가 이런 식으로 발견되고 보니 기분 참 더럽고 그지같다.

8. 진정한 의미에서 교제한 적은 단 한번이었고, 3년 반 동안의 연애를 끝내고 헤어진 날은 다음 주가 되면 꼭 7년이 된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상대였기에 엄마는 무슨 연례행사마냥 '만약 니가 그와 결혼했다면..?'이라는 이상한 질문을 때때로 물어오고 그럴 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진작에 이혼했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건 거짓된 답은 아닐 거다. 헤어질 무렵 그에 대한 내 마음은 애정보다는 연민이 더 커져있었고 만날 때마다 짜증을 냈다. 그와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나를 많이 아끼고 받아줬던 그에게 감사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분명히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그게 내게 허락된 유일한 인연이었을까? 내가 그에게 지은 잘못이 많아 벌을 받는 것일까? 만났던 기간의 두 배만큼 시간이 흘러야 제대로 잊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싶기도 하다. 헤어진 지 7년이 지나면 새로운 인연이 나타나는 걸까? 

9. 그보다도 지금의 나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상태의 사람인가? 이 질문에 이르면 말문이 막히고 숨고 싶어진다. 여전히 나는 자신이 없고,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하거나 믿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10. 요즘의 내가 너무 납작해진 탓도 있겠지. 친구들이 새 가정을 꾸리느라 소원해지고, 코로나로 생활 반경이 작아지면서 더 움츠러들었으니까. 

11.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걸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이는 것도 한 순간에 완결되는 것이 아닌 연속선상의 과정처럼 훈련을 통해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190501

5월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4월은 늘 뜻하지 않게 잔인했고 미칠 것 같은 분홍빛과 세계를 삼킬 것 같은 회색이 뒤섞여 묘한 불안정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다. 월요일의 상담 이후로 (사실 그 전에도 이따금)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대상들은 왜 모두 남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멋지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여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교감이라든가, 학창시절의 여러 선생님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대상까지는 결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을 대리하고 위안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업도 영상으로 대체한 주제에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방과후수업도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의 집들이를 위해 청소할 일도 문득 귀찮게 느껴졌지만, 힘을 내어 오늘도 내 일상을 열심히 마무리했다. 언젠가 이 공간과 이 공간 속에 혼자 있는 나의 일상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면, 충분히 이완하고 늘어지는 날도 오겠지.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찬감다행] 20190430

1. 학급운영에 대해서 멋진 자료를 공유하고 열심히 준비해 발표한 것을 칭 찬 해, 수고하고 고생했어! 2. 중봄에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신 걸 감 사해. 3. 독립 생활의 이러저러한 면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 행이야. 4.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고 행 복했어. 5. 아침에 교문지도 하는 날임에도 미리 가서 공부하고,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은데도 운동과 일기를 거르지 않은 나를 많이 많이 칭 찬 하고 격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