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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9

한밤중에 또 깼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었는데, 처음엔 윗집의 대화 소리인 줄 알았다가 가만 들어보니 쌍방에서 오가는 게 아닌 다소 속도감 있고 목소리에 힘이 실린 일방적인 독백이었다. 생각해보니 지난 번 낮에도 그런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났는데, 그 때는 그 소리가 인터넷 강의 소리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가 하면서 벽에 귀를 대보았다. 간간이 단어가 들리기도 해서 어떤 분야에 관한 얘기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강의 소리가 아닌 유튜브 같은 콘텐츠로 추측이 되었고 구체적으로는 렌즈 등의 얘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는 카메라 리뷰라든가 언박싱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근데 소리가 너무 힘있고 울려서 영상을 재생시킨 게 아니라 직접 촬영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그 시간이 새벽 2시 전후였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내가 그동안 세상모르고 자느라 알지 못했던 것인지, 이따금씩만 소리를 내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앞으로도 타의에 의한 불면의 밤이 잦아질까봐 약간은 두렵다. 오후에 아이들의 외부봉사활동 때문에 학교가 텅 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꽤나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담임이 아닌데도 아이들로 가득찬 학교는 약간 부담스러운가보다. 시험문제도 내고 수업자료도 모두 세팅해 놓을 요량이었으나, 어제 밤부터 골반과 허리 부근에 불쾌한 통증이 느껴져서 아무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듯해 부득불 병조퇴를 달고 나왔다. 다행히 걱정했던 자궁근종이나 자궁내막 관련 질환은 아니었고, 혹시 몰라서 균 검사와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했다. 내진, 내시경 등을 했더니 진료비가 9만원에 육박. 결과가 무사해 가벼워졌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이렇게 돈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이라니... 결국 오늘 이 시간까지도 대학원 과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일의 우선순위가 있는 법인데, 오늘 괜히 원안 출제에 마음이 쏠려 버리고 만 것이다. 벌충하는 의미로 조금 늦게 자더라도 스타트는 끊어놓아야 겠다는 생각이다.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20190428

주말이 끝나간다.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내게 주말은 좀 난감한 시간인데 더구나 난 할매처럼 아침 잠이 많지 않아 이 긴 하루를 또 어찌해야 하나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행동 개시. 빨래를 개고 우아하게 커피를 내려 마시고 책도 좀 읽고 티비도 좀 보고 백만 년 만에 중국어 공부도 좀 하고 짜장라면을 끓여 아점을 해결하고 다시 설거지를 하고 유한락스로 칠갑을 한 후 욕실 청소를 하고 몇 벌의 옷과 면생리대를 표백했다. (이제 보니 보랏빛 맨투맨 티에 락스가 튀었는지 분홍색 점이 생겨서 몹시 속상...) 그래도 아직 한낮이라 밖에 나갔다. 이 동네에도 산책할 만한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중에 중랑천 생각이 났다. 끝자락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니 중랑천으로 통하는 길이 보였고 그 곳엔 참 많은 사람이 나와 걷고 뛰고 얘기하고 있었다. 날이 좀 쨍하면 내 기분도 햇빛에 말릴 수 있어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내내 다소 흐렸다. 음악을 들으며, 우아하게 타 간 아아를 홀짝이며, 그렇게 걸을 때 순간 순간 좀 처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슬펐는데, 그래서 걷지 않고 뛰어보기로 했다. 러닝머신 위가 아닌 곳에서 뛴 게 참으로 오래 전 일이라 그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뛰고 뛰다보면 기분이 반드시 나아지고 새 에너지가 생기리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강한 믿음도 있었다. 10분 여를 뛰고나니 역시나 땀이 슬며시 배어나오며 기분이 좀 나아졌다. 돌아와서는 청소를 하고 티비를 보고 저녁을 해 먹고 설거지를 했다. 욕실 세면대 바로 위에 선반이 없어서 칫솔과 양치컵, 세안용품 등을 둘 수 있는 흡착식 간이 선반을 사서 (처음 내가 했을 때 자꾸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아빠의 손을 빌려 붙여두었는데, 그게 낮에 욕실 물청소를 하며 떨어져버렸다.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해봐도 한 쪽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다. 굳은 마음을 먹고 반드시 해결하리라 하는 오기를 갖고서 결국 튼튼해 보이도록 붙이기는 했다. 삶이란 이 흡착식 간이 선반 같다. 안정감 있게 원하는 곳에 튼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