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20190428

주말이 끝나간다.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내게 주말은 좀 난감한 시간인데 더구나 난 할매처럼 아침 잠이 많지 않아 이 긴 하루를 또 어찌해야 하나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행동 개시. 빨래를 개고 우아하게 커피를 내려 마시고 책도 좀 읽고 티비도 좀 보고 백만 년 만에 중국어 공부도 좀 하고 짜장라면을 끓여 아점을 해결하고 다시 설거지를 하고 유한락스로 칠갑을 한 후 욕실 청소를 하고 몇 벌의 옷과 면생리대를 표백했다. (이제 보니 보랏빛 맨투맨 티에 락스가 튀었는지 분홍색 점이 생겨서 몹시 속상...)
그래도 아직 한낮이라 밖에 나갔다. 이 동네에도 산책할 만한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중에 중랑천 생각이 났다. 끝자락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니 중랑천으로 통하는 길이 보였고 그 곳엔 참 많은 사람이 나와 걷고 뛰고 얘기하고 있었다. 날이 좀 쨍하면 내 기분도 햇빛에 말릴 수 있어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내내 다소 흐렸다. 음악을 들으며, 우아하게 타 간 아아를 홀짝이며, 그렇게 걸을 때 순간 순간 좀 처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슬펐는데, 그래서 걷지 않고 뛰어보기로 했다. 러닝머신 위가 아닌 곳에서 뛴 게 참으로 오래 전 일이라 그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뛰고 뛰다보면 기분이 반드시 나아지고 새 에너지가 생기리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강한 믿음도 있었다. 10분 여를 뛰고나니 역시나 땀이 슬며시 배어나오며 기분이 좀 나아졌다.
돌아와서는 청소를 하고 티비를 보고 저녁을 해 먹고 설거지를 했다. 욕실 세면대 바로 위에 선반이 없어서 칫솔과 양치컵, 세안용품 등을 둘 수 있는 흡착식 간이 선반을 사서 (처음 내가 했을 때 자꾸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아빠의 손을 빌려 붙여두었는데, 그게 낮에 욕실 물청소를 하며 떨어져버렸다.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해봐도 한 쪽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다. 굳은 마음을 먹고 반드시 해결하리라 하는 오기를 갖고서 결국 튼튼해 보이도록 붙이기는 했다.
삶이란 이 흡착식 간이 선반 같다. 안정감 있게 원하는 곳에 튼튼하게 붙어 있고 싶지만, 언제나 약간은 불안정하게 간신히 버티며 다행과 불안 사이를 줄타기 하는.

예정되어 있는 몇 건의 집들이를 떠올리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집이 초라해 보일까봐, 이 집에 사는 내가 처량해 보일까봐, 그래보이지 않으려 애쓰려고 한다. 휑한 벽에 패브릭으로 된 세계지도를 예쁘게 걸고자 했지만, 그리고 베란다 바닥에 원목 타일을 깔고 남은 자리에 예쁜 화분을 두 어개 더 두어 생기를 주고 싶지만 또다시 예산 문제로 갈등을 하게 된다.
2년 후 대출 거치기간이 끝나면 원금의 일부를 갚아 매달의 지출을 좀 줄이고자 계획을 세워보니 당분간 여행은 꿈도 꾸기 어렵겠다.

마음은 번잡하고, 시간은 지루하고, 몸은 바쁘고, 가스와 전기와 물을 많이 쓰고, 그래서 돈은 안쓰려고 노력한 끝에 성공했고, 일기는 잡다하기 그지 없었던 일요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190501

5월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4월은 늘 뜻하지 않게 잔인했고 미칠 것 같은 분홍빛과 세계를 삼킬 것 같은 회색이 뒤섞여 묘한 불안정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다. 월요일의 상담 이후로 (사실 그 전에도 이따금)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대상들은 왜 모두 남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멋지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여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교감이라든가, 학창시절의 여러 선생님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대상까지는 결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을 대리하고 위안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업도 영상으로 대체한 주제에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방과후수업도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의 집들이를 위해 청소할 일도 문득 귀찮게 느껴졌지만, 힘을 내어 오늘도 내 일상을 열심히 마무리했다. 언젠가 이 공간과 이 공간 속에 혼자 있는 나의 일상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면, 충분히 이완하고 늘어지는 날도 오겠지.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찬감다행] 20190430

1. 학급운영에 대해서 멋진 자료를 공유하고 열심히 준비해 발표한 것을 칭 찬 해, 수고하고 고생했어! 2. 중봄에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신 걸 감 사해. 3. 독립 생활의 이러저러한 면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 행이야. 4.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고 행 복했어. 5. 아침에 교문지도 하는 날임에도 미리 가서 공부하고,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은데도 운동과 일기를 거르지 않은 나를 많이 많이 칭 찬 하고 격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