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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1. 한 주의 시작. 중간고사 후 첫 차시인 반들이 많이 남아 영화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심적 부담이 좀 덜하다. 1교시에 영화를 보여주고 돌아왔는데 전교사에게 보내는 교장의 메시지가 와 있다. 영상수업 시에 교육적인 목표와 철저한 계획에 의해 엄선된 영상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아마도 지난 주에 하필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때에 교장이 창을 통해 교실을 뻔히 한참동안 들여다봤다며 크게 걱정하던 영어과 신규 막내쌤이 교장이 훈화를 한 직접적 계기였겠으나, 농땡이 피우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수업을 하는 교사가 나 말고도 여럿 있으니 굳이 전체에게 그런 메시지를 보냈겠다 싶었다. 기분이 나빴던 것은 글의 도입에 괜시리 아이들과 즐겁게 활동하는 열정적인 수업을 펼치는 '고경력 교사'를 콕 짚어 언급했다는 점이다. 분명 영상수업 하는 (젊고 열정도 없는) 교사들과 대조하고자 하는 그 의도를 그런 식으로 표출해대다니 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요일까지는 영상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데, 교과에 적합하고 목적에 부합하고 내용도 유의미해 스스로 당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꽤 신경이 쓰인다.

2. 생리 3일째인데, 양이 좀 많다. 어젯밤에는 자려고 누웠다가 왈칵거리는 게 심상치 않아보이고 짧게 누운 틈에도 생리혈이 새어나오는 걸 보고 기겁해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편의점에 가서 오버나이트를 사왔다. 30대 중반도 지난 나이가 되고 보니, 건강 염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장수에 대해서는 욕망하기는커녕 차라리 재난이라 생각하면서도, 사는 동안은 (재정적, 육체적 고통이 없도록) 건강하게 살다가 잠든 듯 깔끔하고 산뜻하게 떠나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형편없는 체력과 무방비하고 보잘 것 없는 몸덩어리를 이끌고 계속 살아가야 할텐데, 늙는다는 건 어떻고 저떻고 해도 역시나 슬픈 일이다.

3. 상담 Y쌤은 독립 후 보름이 지난 나의 근황에 대해서 듣고는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업들을 좀 해볼 것을 권했다. 목공, 그림, 베이킹 같은 것들.... 구청에서 무료로 하는 14세 이상을 위한 자전거 교실에 신청해볼까 한다고 했더니 그것도 참 좋다고 했다. 자연을 많이 접하고 일조량을 늘리라는 것이 핵심이다. 진정 나를 위해 고민하고 나를 위해 삶을 경영하고 디자인하는 새로운 시간이다. 적응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잘 해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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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1

5월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4월은 늘 뜻하지 않게 잔인했고 미칠 것 같은 분홍빛과 세계를 삼킬 것 같은 회색이 뒤섞여 묘한 불안정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다. 월요일의 상담 이후로 (사실 그 전에도 이따금)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대상들은 왜 모두 남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멋지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여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교감이라든가, 학창시절의 여러 선생님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대상까지는 결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을 대리하고 위안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업도 영상으로 대체한 주제에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방과후수업도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의 집들이를 위해 청소할 일도 문득 귀찮게 느껴졌지만, 힘을 내어 오늘도 내 일상을 열심히 마무리했다. 언젠가 이 공간과 이 공간 속에 혼자 있는 나의 일상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면, 충분히 이완하고 늘어지는 날도 오겠지.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찬감다행] 20190430

1. 학급운영에 대해서 멋진 자료를 공유하고 열심히 준비해 발표한 것을 칭 찬 해, 수고하고 고생했어! 2. 중봄에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신 걸 감 사해. 3. 독립 생활의 이러저러한 면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 행이야. 4.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고 행 복했어. 5. 아침에 교문지도 하는 날임에도 미리 가서 공부하고,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은데도 운동과 일기를 거르지 않은 나를 많이 많이 칭 찬 하고 격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