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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이야기

며칠 간 마음을 계속 추스르고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다.

[생각의 조각들]

1. 앙큼한 년, 얌체같은 기집애,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무하고나 연애를 시작할 애가 아닌데 그 짧은 시간에 교제를 시작하는 대상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고, 아무래도 꽤 오래 전부터 어떤 교류나 신호 같은 것이 있었지만 내게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합리적 의심. 그렇게 이제 연애를 시작했으니 내게 연락하지 않겠지. (실제로도 이미 그러고 있기도 하고.) 기껏 원안 검토를 부탁하거나 뭔가를 묻거나 학교일로 징징거리고 싶을 때에나 돼야 연락하겠지. 팔짱끼고 어디 두고보자 하는 마음으로 김선생이 실제로 그런 비열한 행태를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2. 그런 치사스러운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관계를 끊고 싶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사이에 반복되어 왔던 패턴이기도 하지만, 필요할 때에만 나를 찾는 김선생이, 내가 필요한 순간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야멸차게 버리는 느낌으로. 

3. 김선생이 남양주에 살 때라든가, 미국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 같은 것들이 계속 떠오르면서 자꾸 화가 난다. 배신감과 실망. 우리 관계는 뭐였을까, 나는 김선생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끝내 자신의 속 깊은 곳까지 내게 다 내보이지는 않았던 김선생.  

4. 총체적으로 인생 전반이 호구같았다는 평가가 내 안에서 일어나면서 그게 가장 힘들었던 부분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다짐했다. 나도 누구에게나 모든 것을 다 내보이지 말자. 등가 교환의 법칙을 손에 쥐고 살자. 충고하지 말고 조언하지 말고 우아하게 닥치고 있자. 내 말이 언젠가 내 발등을 찍는 도끼로 돌아올 것처럼.

4. 어쨌거나 스스로가 매력도 없고 인기도 없다고 느끼고, 진정으로 사랑받고 사랑해 본 경험도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중에, 그게 저주받아서는 아닐까 라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혔다. 지금은 그러한 것이 운명이라면, 이 고독과 외로움, 초라한 느낌 같은 것들이 그 운명의 이름으로 내게 주어진 거라면, 그것 역시 끝내 내가 거부할 도리는 없을 것이기에 받아들이고 끌어안으며 살아가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조금 정리하긴 했다. 간혹, 어쩌다 마음이 밝아질 때엔, 내 삶 자체가 저주라기보다 그와 3년 반 동안 함께 했던 시간이 내게 주어졌던 행복한 기억, 소중한 시간, 귀한 행운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드물게나마 그런 생각이 스쳐간다는 사실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어떠한 힘의 방증인 것 같아 좋았다. 

5. 조금 더 묵직하고 무게감 있고 신중하면서도 진실하고 우아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언행을 조심하고 매 순간 스스로에게 진실해야겠다. 쉽지는 않지만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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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1

5월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4월은 늘 뜻하지 않게 잔인했고 미칠 것 같은 분홍빛과 세계를 삼킬 것 같은 회색이 뒤섞여 묘한 불안정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다. 월요일의 상담 이후로 (사실 그 전에도 이따금)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대상들은 왜 모두 남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멋지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여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교감이라든가, 학창시절의 여러 선생님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대상까지는 결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을 대리하고 위안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업도 영상으로 대체한 주제에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방과후수업도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의 집들이를 위해 청소할 일도 문득 귀찮게 느껴졌지만, 힘을 내어 오늘도 내 일상을 열심히 마무리했다. 언젠가 이 공간과 이 공간 속에 혼자 있는 나의 일상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면, 충분히 이완하고 늘어지는 날도 오겠지.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찬감다행] 20190430

1. 학급운영에 대해서 멋진 자료를 공유하고 열심히 준비해 발표한 것을 칭 찬 해, 수고하고 고생했어! 2. 중봄에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신 걸 감 사해. 3. 독립 생활의 이러저러한 면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 행이야. 4.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고 행 복했어. 5. 아침에 교문지도 하는 날임에도 미리 가서 공부하고,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은데도 운동과 일기를 거르지 않은 나를 많이 많이 칭 찬 하고 격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