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20190514

1. 주중의 피로와 주말의 분주함으로 나흘만에 일기를 쓴다.
2. 주말 중 토요일 낮엔 인근에 사는 동교과 발령동기 쌤 둘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개성 강하고 내면이 단단한 그들을 보며 나는 참 흐리멍덩한 색깔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따금 하게 되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인 거지.
3. 일요일에는 언니가 일이 있어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조카를 우리 집에 데려다놓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재잘 조잘 말을 참 잘도 하는 조카를 보며 귀엽기도 하고 이렇게나 빠른 시간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세상에 대해 새삼스러운 걱정도 들었다. 간식 먹이고 밥 해 먹이고 조카가 책 보고 공부하는 동안 나도 틈틈이 내 과제하고 소화시키려고 나가서 좀 걷고 조카가 좋아하는 중고서점에 들러 책 찾아본 게 다였다. 안고 젖을 물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저귀 갈고 씻겨야 하는 것도 아닌데, 엄청 피곤했다. 육아는 자신이 없다. 내 몸뚱아리 하나 데리고 사는 것도 겨우 하고 있다.
4. 어제는 방과후수업을 마치고 상담을 다녀왔다. 번아웃과 슬럼프를 겪고 있는 요즘의 내 상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쌤은 내가 지쳐있는 원인을 아이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보다는 관계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을 구성하는 관계가 다양함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들과의 관계에 치중되어 있었던 (달리 말하면 다른 영역에서의 관계가 전무에 가깝도록 빈곤하다는) 점,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에너지의 균형을 잃는 점 같은 것들 말이다. 토요일에 놀러왔던 부산  출신의 K쌤은 나더러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왔는데, 설명을 듣고보니, 또 상담을 다녀와보니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어쨌거나 번아웃 상태를 스스로 감지한 것만으로도 상태가 다소 호전되고 있다.
5. 내일은 스승의 날.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매체에서 교육과 교사의 비루한 현실에 대해 고발하거나, 비현실적일만큼 헌신적인 교사를 발굴해 감동을 강요하거나, 비상식적이고 몰지각한 교사와 관련된 사안을 폭로한다. 올해도 스승의 날을 없애고 교육의 날로 바꾸자는 둥 여러 의견이 쏟아지고 있지만 일주일용 일 것이다. 이번 주간이 지나가면 교육현장에 귀기울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테니까.
어쨌거나 내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단축수업이 예정되어 있어, 목요일로 예약해둔 병원 진료를 급히 수요일로 바꾸었다. 내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시간으로 미리 조퇴를 달아두었다. 내 계획은 6교시 수업 전에 업무용 컴퓨터를 모두 끄고, 가방은 들고 교실에 올라갔다가, 수업을 마치면 교무실에 들르지 않고 바로 퇴근하는 것인데, 목적은 찾아오는 졸업생을 피해가기 위함이다. 작년엔 예전 여섯 해 동안의 제자들이 제각기 찾아와 교무실에 한데 섞이고 사이 사이 전화나 카톡 , 문자로도 많은 연락이 왔기 때문에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 정신없음이 뿌듯하기도 하고 스승의 날 특유의 그 묘한 불안과 우울과 성가심이 도사리는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너무 소진되어 있어서, 가볍게 들르는 졸업생들과 짧은 말 한 두마디 섞는 것조차 너무나 버겁고 부담스럽다. 정작 내일 나를 찾아오거나 내게 연락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을 수도 있겠으나, 일단 피하고 본다. 핸드폰으로 미리 찾아뵙겠다는 연락이라도 올까 싶어 며칠 전부터 카톡 상메를 미리 핸드폰에 이상이 있는 것처럼 바꿔두었다. 이런 치밀함을 보고 아는 동생 O양은 치언니라고 불러야겠다며 호들갑이었지만, 사실 참 슬픈 일이다. 이런 식으로 치밀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나는 소진되고 텅 비어서 줄 것이 없다. 그래서 문득 소설 제목으로 써도 졸을 만한 문구가 떠올랐다, "누가 이선생을 도망치게 했는가" 정도의.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190501

5월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4월은 늘 뜻하지 않게 잔인했고 미칠 것 같은 분홍빛과 세계를 삼킬 것 같은 회색이 뒤섞여 묘한 불안정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다. 월요일의 상담 이후로 (사실 그 전에도 이따금)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대상들은 왜 모두 남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멋지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여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교감이라든가, 학창시절의 여러 선생님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대상까지는 결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을 대리하고 위안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업도 영상으로 대체한 주제에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방과후수업도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의 집들이를 위해 청소할 일도 문득 귀찮게 느껴졌지만, 힘을 내어 오늘도 내 일상을 열심히 마무리했다. 언젠가 이 공간과 이 공간 속에 혼자 있는 나의 일상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면, 충분히 이완하고 늘어지는 날도 오겠지.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찬감다행] 20190430

1. 학급운영에 대해서 멋진 자료를 공유하고 열심히 준비해 발표한 것을 칭 찬 해, 수고하고 고생했어! 2. 중봄에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신 걸 감 사해. 3. 독립 생활의 이러저러한 면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 행이야. 4.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고 행 복했어. 5. 아침에 교문지도 하는 날임에도 미리 가서 공부하고,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은데도 운동과 일기를 거르지 않은 나를 많이 많이 칭 찬 하고 격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