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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0

1. 일기를 쓰는 주기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새로운 환경과 일상에 적응해간다는 반증일 것이다. 강박적으로 날마다 빠짐없이 일기를 쓸 수는 없겠지만, 바쁜 일과에 매몰되어 자신과 하루를 점검하고 돌아보는 기회는 되도록 자주 갖도록 노력할 일이다.
2. 지난 일요일에는 사촌오빠의 결혼식이 있었다. 내 연애사에서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오빠 친구 M-지금은 유부남이 되었다-을 볼 일이 조금은 신경쓰였는데, 그건 M에 대해 호감이나 미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당시만 해도 여전히 미숙하고 어리기만 했던 내 모습을 보였던 대상이었고, 그래서인지 내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흐지부지 관계를 종결했던 그에게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인 듯했다. 신랑신부를 위한 축사를 낭송하기 위해 무대에 등장한 M의 모습은 살이 많이 쪄 키가 더욱 작아보이는 그저 그런 아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도 이제 웃을 때의 주름을 감출 길 없는 아줌마가 되고도 남았을 나이의 노처녀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것이)기 때문에 아재를 보며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겠으나, 어쨌거나 흘러간 시간들이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회한스럽기도 했다.
3. 사실 일요일에 내 마음을 시리고 허하게 만든 것은 사촌오빠가 아닌 다른 두 남자의 결혼 소식이었다. 하나는 야망이 많고 공부도 잘 해서 결국 한의대에 진학해 한의사가 된 중학교 동창놈이고, 또 하나는 좀 황당하게도 가수 하림. 이상하게도 한동안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잘 들리지 않다가 올해 들어서서 결혼하는 지인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이젠 동성의 친구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쓰라리거나 불안해지지는 않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이성인 지인들의 결혼 소식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가보다, 더구나 그 동창 아이는 나와 그다지 친밀하거나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친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림에 대해서는 아마 나는 그가 영원히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혼자 확신하고 있었나보다. 여기 저기에서 짝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는 소식을 들려주는 것을 보니 지금은 좋은 계절이로구나.
4. 결혼식에서 실로 오랜만에 만난 막내고모부는 유난히 나에 대해 호평을 해댔다. 야무지다느니, 주변에서 많이 탐내겠다느니,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 독립한 것을 보니 알뜰하고 능력 있다느니, 선남선녀 부모님을 닮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예쁘다느니....아직도 이런 류의 칭찬(?)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지만 꽤 기분 좋고 일종의 승리감마저 느꼈다.
5. 그러나 일희일비는 범부의 팔자. 귀여운 아이들의 환대와 환호, 교무실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힘을 가진 정년을 앞둔 K쌤의 따스한 칭찬, 졸업생이 찾아올 때의 어깨가 으쓱거리는 느낌, 막내 고모부의 호감 어린 시선과 칭찬...이런 것들을 곱씹으며 기분이 꽤 좋아져 헬스장에서 파워 워킹을 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고가의 블루투스 헤드폰이 해체되어 있고, 집에는 여전히 감자조림의 지독한 간장 냄새가 가시질 않았고, 안방 벽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걸 발견하는 바람에 급격히 짜증스러워졌다.
6. 과제도 할 요량이었는데 또 어느덧 1시가 넘고 말았다. 24시간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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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1

5월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4월은 늘 뜻하지 않게 잔인했고 미칠 것 같은 분홍빛과 세계를 삼킬 것 같은 회색이 뒤섞여 묘한 불안정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다. 월요일의 상담 이후로 (사실 그 전에도 이따금)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대상들은 왜 모두 남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멋지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여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교감이라든가, 학창시절의 여러 선생님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대상까지는 결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을 대리하고 위안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업도 영상으로 대체한 주제에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방과후수업도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의 집들이를 위해 청소할 일도 문득 귀찮게 느껴졌지만, 힘을 내어 오늘도 내 일상을 열심히 마무리했다. 언젠가 이 공간과 이 공간 속에 혼자 있는 나의 일상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면, 충분히 이완하고 늘어지는 날도 오겠지.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찬감다행] 20190430

1. 학급운영에 대해서 멋진 자료를 공유하고 열심히 준비해 발표한 것을 칭 찬 해, 수고하고 고생했어! 2. 중봄에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신 걸 감 사해. 3. 독립 생활의 이러저러한 면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 행이야. 4.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고 행 복했어. 5. 아침에 교문지도 하는 날임에도 미리 가서 공부하고,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은데도 운동과 일기를 거르지 않은 나를 많이 많이 칭 찬 하고 격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