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났다. 4일의 휴가 기간 동안 여러 계획을 세워두었는데, 건강검진만이 온전히 실행에 성공했고, 산부인과 검진과 목욕가기, 푸셩이 만나기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해내지 못했으며, 운동은 절반만 했다. 본가에 가 있는 3일 반의 시간 중에 이틀은 거의 누워지내며 먹고자고 먹고자고를 반복했다. 어찌나 무위도식했는지, 오죽하면 오른쪽 눈의 쌍꺼풀 라인이 무너지고 서너개의 짙은 줄이 생겼다.
독립 3주차에 접어든 시점에 본가에 가보니 역시나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가에 가면 한없이 늘어지고 배고프지 않아도 끊임없이 뭔가를 먹게 되는데, 이건 긴장이 느슨해지고 이완되어 편안히 휴식을 취한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뭔가 공허감을 더 느끼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집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으나, 집에 가보아도 딱히 길게 나눌 얘기가 별로 없고 그나마 나-엄마 혹은 나-아빠 간의 대화가 이루어질 뿐 나-엄마-아빠 삼자가 원활히 오가는 대화란 건 전무하다.
요즘 온갖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지겨운 '인생권태기'이기 때문에 본가에서의 그런 모습이 더더욱 우울하고 공허하게 인식되어 울적했다. H의 툭툭 던져오는 발랄한 질문들이 -속좁게도- 철없는 부잣집 공주님처럼만 느껴져 답하기 싫어졌다. 예를 들어 본가에 가니 좋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속으로 울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독립해 나온 집에서도 따뜻함이나 충만함을 느낄 수 없고,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가더라도 소속감이나 포근함을 느끼지 못해, 어디에서나 이방인 신세인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부모와 내게 주어진 세계를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니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애쓰며 산다. 내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지어나가보려고 독립해 나온 이 곳에서 또다른 외로움과 공허, 고독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것 역시 내게 주어진 과제이자 숙명이라 생각하고 내 일상과 잘 섞고 배합해 예쁘게 빚어보려 한다.
연휴 끝의 출근이 괴로웠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세 시간 뿐이었던 화요일 수업 시간표와 퇴근 후에 예정되어 있는 H중 쌤들과의 모임 덕분이었다. 몇 달 사이에 더 늙으신 P부장님과 피곤해 보이는 K쌤, 여전한 모습의 K부장님과의 만남에서 담임의 어려움을 듣고,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듣다가, 슬쩍 인생권태기에 빠진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이 슬럼프와 권태는 다음 도약을 위한 움츠림이 될 수 있으며, 그건 내가 결정한다는 걸. 학교에 들어와 7년 간 가진 능력 이상으로 달려왔고, 30년 넘게 살아온 인생에서는 늘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것을 뛰어넘고 극복하려 노력하고 애써왔다.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과 댓가가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가성비가 좋은 편이었다고는 할 수가 없다. 지금 나에게 슬럼프가 왔다면, 나를 잘 다독이고 어루만지고 쉼을 제공할 때라는 뜻일 게다. 쉬어가야 또 살아가니까. 쉼 이후에 다시 힘을 내어 달릴 수 있을 때엔 조금 더 노련하고 현명한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운동을 했고 자기 전 이 일기를 쓴다.
독립 3주차에 접어든 시점에 본가에 가보니 역시나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가에 가면 한없이 늘어지고 배고프지 않아도 끊임없이 뭔가를 먹게 되는데, 이건 긴장이 느슨해지고 이완되어 편안히 휴식을 취한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뭔가 공허감을 더 느끼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집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으나, 집에 가보아도 딱히 길게 나눌 얘기가 별로 없고 그나마 나-엄마 혹은 나-아빠 간의 대화가 이루어질 뿐 나-엄마-아빠 삼자가 원활히 오가는 대화란 건 전무하다.
요즘 온갖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지겨운 '인생권태기'이기 때문에 본가에서의 그런 모습이 더더욱 우울하고 공허하게 인식되어 울적했다. H의 툭툭 던져오는 발랄한 질문들이 -속좁게도- 철없는 부잣집 공주님처럼만 느껴져 답하기 싫어졌다. 예를 들어 본가에 가니 좋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속으로 울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독립해 나온 집에서도 따뜻함이나 충만함을 느낄 수 없고,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가더라도 소속감이나 포근함을 느끼지 못해, 어디에서나 이방인 신세인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부모와 내게 주어진 세계를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니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애쓰며 산다. 내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지어나가보려고 독립해 나온 이 곳에서 또다른 외로움과 공허, 고독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것 역시 내게 주어진 과제이자 숙명이라 생각하고 내 일상과 잘 섞고 배합해 예쁘게 빚어보려 한다.
연휴 끝의 출근이 괴로웠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세 시간 뿐이었던 화요일 수업 시간표와 퇴근 후에 예정되어 있는 H중 쌤들과의 모임 덕분이었다. 몇 달 사이에 더 늙으신 P부장님과 피곤해 보이는 K쌤, 여전한 모습의 K부장님과의 만남에서 담임의 어려움을 듣고,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듣다가, 슬쩍 인생권태기에 빠진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이 슬럼프와 권태는 다음 도약을 위한 움츠림이 될 수 있으며, 그건 내가 결정한다는 걸. 학교에 들어와 7년 간 가진 능력 이상으로 달려왔고, 30년 넘게 살아온 인생에서는 늘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것을 뛰어넘고 극복하려 노력하고 애써왔다.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과 댓가가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가성비가 좋은 편이었다고는 할 수가 없다. 지금 나에게 슬럼프가 왔다면, 나를 잘 다독이고 어루만지고 쉼을 제공할 때라는 뜻일 게다. 쉬어가야 또 살아가니까. 쉼 이후에 다시 힘을 내어 달릴 수 있을 때엔 조금 더 노련하고 현명한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운동을 했고 자기 전 이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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