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20190508

대大권태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를 좀 내버려두고 쉬게 해주면서, 앞으로 직업 환경과 개인적인 영역에서 어떤 패턴의 생활을 해야 소진을 피할 수 있을지 현명한 방법을 탐색하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난 7년 간의 학교 생활에서 지나치게 애써서 그야말로 '불태웠고', 그보다 더더 긴 30여 년의 시간 속에서는 때로는 부모에게 인정받으려, 때로는 내게 주어진 환경을 부정하거나 극복하려, 혹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너무나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다그쳐왔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그 사실을 느끼고 깨달았으니 휴식을 주고 껴안아 품어주고 다독여주며 치유하면 된다.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햇살처럼 따뜻하게.

어버이날을 맞이해 이틀 만에 다시 본가를 방문했다. 지난 주만 해도 한없이 얇아진 주머니 사정 때문에 너무 적은 용돈을 드리게 된 상황이 죄스러워 어버이날이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보니 선물이나 용돈이 어떻든 간에 편안히 맞아주는 부모님과 가족들이어서 다행스러웠다. 독립의 가장 큰 이점은 가족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보다 느긋하고 여유 있는 상태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가끔씩만 만나게 되니 싸울 일이 없고 애틋함이 커지고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피로의 누적 탓인지 본격적으로 노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부쩍 피로를 많이 느낀다. 견딜 수 없이 피곤하고,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가 조금씩 늘 아프다. 최근 며칠은 갑자기 흐트러지고 무너진 쌍꺼풀 라인이 다시 돌아오지 않아 꽤 걱정을 했다. 본가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거의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지금도 이렇게 몸이 늙어가는 게 서러운데 앞으로 죽는 날까지 얼마나 더 서러움이 쌓여갈지, 참 인생은 견디고 감내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190501

5월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4월은 늘 뜻하지 않게 잔인했고 미칠 것 같은 분홍빛과 세계를 삼킬 것 같은 회색이 뒤섞여 묘한 불안정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다. 월요일의 상담 이후로 (사실 그 전에도 이따금)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대상들은 왜 모두 남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멋지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여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교감이라든가, 학창시절의 여러 선생님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대상까지는 결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을 대리하고 위안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업도 영상으로 대체한 주제에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방과후수업도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의 집들이를 위해 청소할 일도 문득 귀찮게 느껴졌지만, 힘을 내어 오늘도 내 일상을 열심히 마무리했다. 언젠가 이 공간과 이 공간 속에 혼자 있는 나의 일상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면, 충분히 이완하고 늘어지는 날도 오겠지.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찬감다행] 20190430

1. 학급운영에 대해서 멋진 자료를 공유하고 열심히 준비해 발표한 것을 칭 찬 해, 수고하고 고생했어! 2. 중봄에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신 걸 감 사해. 3. 독립 생활의 이러저러한 면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 행이야. 4.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고 행 복했어. 5. 아침에 교문지도 하는 날임에도 미리 가서 공부하고,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은데도 운동과 일기를 거르지 않은 나를 많이 많이 칭 찬 하고 격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