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쾌, 권태모양이다. , 무감, 체념... 요즘의 내 상태를 이런 단어들로 표현하면 될까.
2. 외가의 문제는 너무나 고질적이고 고약하다. 서로를 보기만 해도 자신의 상처가 떠올라 그런가, 평소엔 자기 삶의 영역에서 멀쩡한 사회인으로 잘 기능하다가도 원가족과 접촉하기만 하면 지나치게 히스테릭해지고 피해망상도 드러난다. 최근에도 엄마-할머니-둘째삼촌-외숙모 간의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그 일주일 전 쯤 외숙모가 느닷없이 내게 누군가를 소개받으라며 연락을 해왔고, 만남에 갈급해있던 나는 거절하기가 아쉬워 엄마와의 유례없는 긴 통화 끝에 절반의 허락(?)을 구한 후 외숙모의 제안을 수락했던 차였다.
1) 나는 나의 부모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버지로서도 어머니로서도 내가 원하는 부모상은 아니었다. 그건 다만 교양이나 사회적 지위나 경제상황에서의 불만족 때문이 아니라, 가치관과 인생관이 다른 데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더구나 내 부모는 애정 없이 결혼하여 살고 있는 사이이다. 다만 두 분 모두 무한 책임감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성실히 가정을 꾸려왔다.
2)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둘째 삼촌네 집에 놀러가면 좋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삼촌은 예민하고 괴팍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 부담스러운 사람이었지만 예쁘고 교양과 지성이 넘치면서도 상냥한 숙모가 좋았다. 내가 꿈꾸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해해주었고 그게 너무 거칠고 순진한 것이라 해도 그 상태에 서 있는 그 나이의 나 자체를 존중해주었다. 날카로운 삼촌도 숙모 앞에서는 좀 부드러운 모습이었고, 둘이 서로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 또 그 사랑을 바탕으로 쌓아온 시간들의 힘이 느껴졌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사촌동생 둘도 내 친언니보다 더 마음을 이끌었다. 꼬물꼬물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봐서이기도 했고, 동생으로서 받은 것 별로 없이 늘 치이기만 했던 나로서는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3) 엄마는 나의 엄마이면서 할머니의 딸이고 숙모의 시누이이다.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인데 엄마의 엄마이고 숙모의 시모다. 숙모는 나의 숙모이지만 엄마의 올케이고 할머니의 며느리다. 내 안의 객관적인 나는 90이 넘어도 대단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할머니와 집요하고 고집스러운 엄마와 총명하고 지혜로운 만큼 비합리적인 것엔 제동을 걸 줄 아는 숙모, 그리고 그 사이에 껴 있는 원가족 사이에서는 정상 범주 내의 사람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삼촌 사이의 역동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그래서 할머니의 투정도 엄마의 분노도 어느 정도 오해가 섞여 있을 거라 생각되고, 또 나이 50이 넘어서 뒤늦게 몸 불편하고 해 준 것 없이 괴롭히기만 했던 늙은 시모를 모셔야 하는 숙모의 입장이 같은 여자로서 얼마나 싫을까 싶다.
4) 어쨌거나 외가의 케케묵은 갈등과 고질적인 문제들이 나는 머리가 아프다. 삼촌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몇 년 전부터 심화된 삼촌, 숙모- 엄마 간의 갈등과 오해로 인해 더 이상 삼촌, 숙모와 따로 연락을 하고 지내기도 껄끄러워졌다. 삼촌 숙모와 왕래하고 사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엄마가 제지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 결국엔 엄마의 딸인지라 엄마가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을 볼 때엔 나도 편할 수가 없으니까.
5) 며칠 전 엄마가 삼촌에게 문자가 왔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난 짜증이 났다. 엄마도 나이가 들어 더 그렇겠지만, 엄마는 왜 동기간의 갈등을 자식에게 호소할까. 뭐랄까, 그게 좀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엄마라면 물론 많이 속상하고 힘들겠지만 그걸 자식에게 일일이 토로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내가 니 외삼촌과 싸워 힘드니 너도 외삼촌과 왕래하지 말고 싸워라, 라는 얘기인 건가. 우스운 건 삼촌도 마찬가지라는 점이었다. 엄마가 삼촌의 문자에 반응을 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그날 삼촌은 내게 거의 걸어오지 않던 전화를 해왔다. 그 순간 마음의 압박이 매우 크게 다가왔고,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이젠 삼촌이나 숙모의 전화 연락이 하나의 노이로제처럼 느끼게끔 된 것 같다. 나와 그들의 직접적인 사이에는 그럴 일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6) 또 한편으로 엄마에게는 내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낳고 기른, 사랑하는 자식이겠지만, 표현하기가 좀 힘든데 아무튼 나는 없다. 엄마에게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마음 아프게 세상 떠난 큰 동생, 정신 질환 앓는 가련한 인생의 이모가 속 아픈 가족으로 남아 있고, 추가적으로 애증의 대상 할머니와 걱정을 놓지 못하게 하는 언니 정도의 존재만이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가족상담 교재를 읽다보니 이런 우리 집의 상황이 좀 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거대한 문제 상황 속에서 자란 엄마와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채 자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참...
3. 가장 최근의 상담에서 선생님은 내게 고집이 너무 세다고 했다. 그 말은 상담자로서 행하는 상담법과 상담기술의 일환으로 발화되었다기보다, 답답한 마음에 속마음이 신음처럼 세어나온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좀 우울하다. 3년이 넘어 4년을 채워가는 긴 상담 속에서 달팽이처럼 느려도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그 말 한마디에 그 믿음과 버팀목이 되었던 자부심이 와르르 무너진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예전의 갇히고 병들고 이상한 그 나 그대로인가. 나는 어떻게 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가. 변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의 삶은 어떤 모습이려나. 푹 꺼졌다, 축 늘어졌다. 기운이 없다. 희망도 없는 느낌이다.
4. 주변의 결혼과 연애 소식에 자극을 받은 탓인지 만남이 갈급해졌다. 일부러 소개팅을 거절하고 안한 게 1년이 넘었는데, 지금은 소개 들어오는 것은 다 할 태세다. 그런데 그게 오래가지 못하고 시들하다. 그런 데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다시 많이 꺾여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염세적 태도와 생각이 커진 탓도 있다. 나를 믿지 못하고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생을 기대하지 못하고 세상을 낙관하지 못한다. 그냥 하루 하루 최소한의 인생을 살고, 아니 버텨내고 있다.
2. 외가의 문제는 너무나 고질적이고 고약하다. 서로를 보기만 해도 자신의 상처가 떠올라 그런가, 평소엔 자기 삶의 영역에서 멀쩡한 사회인으로 잘 기능하다가도 원가족과 접촉하기만 하면 지나치게 히스테릭해지고 피해망상도 드러난다. 최근에도 엄마-할머니-둘째삼촌-외숙모 간의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그 일주일 전 쯤 외숙모가 느닷없이 내게 누군가를 소개받으라며 연락을 해왔고, 만남에 갈급해있던 나는 거절하기가 아쉬워 엄마와의 유례없는 긴 통화 끝에 절반의 허락(?)을 구한 후 외숙모의 제안을 수락했던 차였다.
1) 나는 나의 부모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버지로서도 어머니로서도 내가 원하는 부모상은 아니었다. 그건 다만 교양이나 사회적 지위나 경제상황에서의 불만족 때문이 아니라, 가치관과 인생관이 다른 데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더구나 내 부모는 애정 없이 결혼하여 살고 있는 사이이다. 다만 두 분 모두 무한 책임감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성실히 가정을 꾸려왔다.
2)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둘째 삼촌네 집에 놀러가면 좋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삼촌은 예민하고 괴팍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 부담스러운 사람이었지만 예쁘고 교양과 지성이 넘치면서도 상냥한 숙모가 좋았다. 내가 꿈꾸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해해주었고 그게 너무 거칠고 순진한 것이라 해도 그 상태에 서 있는 그 나이의 나 자체를 존중해주었다. 날카로운 삼촌도 숙모 앞에서는 좀 부드러운 모습이었고, 둘이 서로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 또 그 사랑을 바탕으로 쌓아온 시간들의 힘이 느껴졌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사촌동생 둘도 내 친언니보다 더 마음을 이끌었다. 꼬물꼬물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봐서이기도 했고, 동생으로서 받은 것 별로 없이 늘 치이기만 했던 나로서는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3) 엄마는 나의 엄마이면서 할머니의 딸이고 숙모의 시누이이다.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인데 엄마의 엄마이고 숙모의 시모다. 숙모는 나의 숙모이지만 엄마의 올케이고 할머니의 며느리다. 내 안의 객관적인 나는 90이 넘어도 대단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할머니와 집요하고 고집스러운 엄마와 총명하고 지혜로운 만큼 비합리적인 것엔 제동을 걸 줄 아는 숙모, 그리고 그 사이에 껴 있는 원가족 사이에서는 정상 범주 내의 사람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삼촌 사이의 역동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그래서 할머니의 투정도 엄마의 분노도 어느 정도 오해가 섞여 있을 거라 생각되고, 또 나이 50이 넘어서 뒤늦게 몸 불편하고 해 준 것 없이 괴롭히기만 했던 늙은 시모를 모셔야 하는 숙모의 입장이 같은 여자로서 얼마나 싫을까 싶다.
4) 어쨌거나 외가의 케케묵은 갈등과 고질적인 문제들이 나는 머리가 아프다. 삼촌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몇 년 전부터 심화된 삼촌, 숙모- 엄마 간의 갈등과 오해로 인해 더 이상 삼촌, 숙모와 따로 연락을 하고 지내기도 껄끄러워졌다. 삼촌 숙모와 왕래하고 사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엄마가 제지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 결국엔 엄마의 딸인지라 엄마가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을 볼 때엔 나도 편할 수가 없으니까.
5) 며칠 전 엄마가 삼촌에게 문자가 왔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난 짜증이 났다. 엄마도 나이가 들어 더 그렇겠지만, 엄마는 왜 동기간의 갈등을 자식에게 호소할까. 뭐랄까, 그게 좀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엄마라면 물론 많이 속상하고 힘들겠지만 그걸 자식에게 일일이 토로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내가 니 외삼촌과 싸워 힘드니 너도 외삼촌과 왕래하지 말고 싸워라, 라는 얘기인 건가. 우스운 건 삼촌도 마찬가지라는 점이었다. 엄마가 삼촌의 문자에 반응을 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그날 삼촌은 내게 거의 걸어오지 않던 전화를 해왔다. 그 순간 마음의 압박이 매우 크게 다가왔고,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이젠 삼촌이나 숙모의 전화 연락이 하나의 노이로제처럼 느끼게끔 된 것 같다. 나와 그들의 직접적인 사이에는 그럴 일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6) 또 한편으로 엄마에게는 내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낳고 기른, 사랑하는 자식이겠지만, 표현하기가 좀 힘든데 아무튼 나는 없다. 엄마에게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마음 아프게 세상 떠난 큰 동생, 정신 질환 앓는 가련한 인생의 이모가 속 아픈 가족으로 남아 있고, 추가적으로 애증의 대상 할머니와 걱정을 놓지 못하게 하는 언니 정도의 존재만이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가족상담 교재를 읽다보니 이런 우리 집의 상황이 좀 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거대한 문제 상황 속에서 자란 엄마와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채 자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참...
3. 가장 최근의 상담에서 선생님은 내게 고집이 너무 세다고 했다. 그 말은 상담자로서 행하는 상담법과 상담기술의 일환으로 발화되었다기보다, 답답한 마음에 속마음이 신음처럼 세어나온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좀 우울하다. 3년이 넘어 4년을 채워가는 긴 상담 속에서 달팽이처럼 느려도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그 말 한마디에 그 믿음과 버팀목이 되었던 자부심이 와르르 무너진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예전의 갇히고 병들고 이상한 그 나 그대로인가. 나는 어떻게 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가. 변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의 삶은 어떤 모습이려나. 푹 꺼졌다, 축 늘어졌다. 기운이 없다. 희망도 없는 느낌이다.
4. 주변의 결혼과 연애 소식에 자극을 받은 탓인지 만남이 갈급해졌다. 일부러 소개팅을 거절하고 안한 게 1년이 넘었는데, 지금은 소개 들어오는 것은 다 할 태세다. 그런데 그게 오래가지 못하고 시들하다. 그런 데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다시 많이 꺾여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염세적 태도와 생각이 커진 탓도 있다. 나를 믿지 못하고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생을 기대하지 못하고 세상을 낙관하지 못한다. 그냥 하루 하루 최소한의 인생을 살고, 아니 버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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