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5월, 2019의 게시물 표시

20190520

1. 일기를 쓰는 주기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새로운 환경과 일상에 적응해간다는 반증일 것이다. 강박적으로 날마다 빠짐없이 일기를 쓸 수는 없겠지만, 바쁜 일과에 매몰되어 자신과 하루를 점검하고 돌아보는 기회는 되도록 자주 갖도록 노력할 일이다. 2. 지난 일요일에는 사촌오빠의 결혼식이 있었다. 내 연애사에서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오빠 친구 M-지금은 유부남이 되었다-을 볼 일이 조금은 신경쓰였는데, 그건 M에 대해 호감이나 미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당시만 해도 여전히 미숙하고 어리기만 했던 내 모습을 보였던 대상이었고, 그래서인지 내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흐지부지 관계를 종결했던 그에게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인 듯했다. 신랑신부를 위한 축사를 낭송하기 위해 무대에 등장한 M의 모습은 살이 많이 쪄 키가 더욱 작아보이는 그저 그런 아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도 이제 웃을 때의 주름을 감출 길 없는 아줌마가 되고도 남았을 나이의 노처녀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것이)기 때문에 아재를 보며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겠으나, 어쨌거나 흘러간 시간들이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회한스럽기도 했다. 3. 사실 일요일에 내 마음을 시리고 허하게 만든 것은 사촌오빠가 아닌 다른 두 남자의 결혼 소식이었다. 하나는 야망이 많고 공부도 잘 해서 결국 한의대에 진학해 한의사가 된 중학교 동창놈이고, 또 하나는 좀 황당하게도 가수 하림. 이상하게도 한동안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잘 들리지 않다가 올해 들어서서 결혼하는 지인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이젠 동성의 친구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쓰라리거나 불안해지지는 않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이성인 지인들의 결혼 소식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가보다, 더구나 그 동창 아이는 나와 그다지 친밀하거나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친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림에 대해서는 아마 나는 그가 영원히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혼자 확신하고 있었나보다. 여기 저기에서 짝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는 소식을 들려주는 것을 보니 지금은 좋은...

20190514

1. 주중의 피로와 주말의 분주함으로 나흘만에 일기를 쓴다. 2. 주말 중 토요일 낮엔 인근에 사는 동교과 발령동기 쌤 둘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개성 강하고 내면이 단단한 그들을 보며 나는 참 흐리멍덩한 색깔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따금 하게 되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인 거지. 3. 일요일에는 언니가 일이 있어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조카를 우리 집에 데려다놓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재잘 조잘 말을 참 잘도 하는 조카를 보며 귀엽기도 하고 이렇게나 빠른 시간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세상에 대해 새삼스러운 걱정도 들었다. 간식 먹이고 밥 해 먹이고 조카가 책 보고 공부하는 동안 나도 틈틈이 내 과제하고 소화시키려고 나가서 좀 걷고 조카가 좋아하는 중고서점에 들러 책 찾아본 게 다였다. 안고 젖을 물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저귀 갈고 씻겨야 하는 것도 아닌데, 엄청 피곤했다. 육아는 자신이 없다. 내 몸뚱아리 하나 데리고 사는 것도 겨우 하고 있다. 4. 어제는 방과후수업을 마치고 상담을 다녀왔다. 번아웃과 슬럼프를 겪고 있는 요즘의 내 상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쌤은 내가 지쳐있는 원인을 아이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보다는 관계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을 구성하는 관계가 다양함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들과의 관계에 치중되어 있었던 (달리 말하면 다른 영역에서의 관계가 전무에 가깝도록 빈곤하다는) 점,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에너지의 균형을 잃는 점 같은 것들 말이다. 토요일에 놀러왔던 부산  출신의 K쌤은 나더러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왔는데, 설명을 듣고보니, 또 상담을 다녀와보니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어쨌거나 번아웃 상...

20190510

기말고사 문제 출제를 끝냈다. 진도를 조정해서 수업에 여유가 생겨 마음이 편해졌다. 본문 외우기 스피드게임을 했다. 교내육상대회라 산만한 반도 있었다. 오늘 유독 여러 아이들이 찾아와 애정표현을 하고 갔다. 이름찾기 숙제를 잘 해 온 아이들이 많았다. 스윙 동호회 K에게 전화가 온 것을 동명이인의 다른 쌤으로부터 연락온 거라 착각했다. K가 난데없이 왜 전화했을까 추측해보다 다른 소식을 기대해보기도 했는데, 전화를 한 건 단순히 버튼이 잘못 눌려진 실수였다. 나의 기대가 부끄럽고 초라했다. 내일의 집들이 준비로 장을 어디까지 봐야 하나 하는 문제에서 일순간 예민했다. 경제적인 사정이 최악인 만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행위였겠으나 한편으론 그런 모습이 좀 부끄러웠다. 그냥 카드를 긁어 평소엔 잘 먹지 않는 딸기와 청포도를 샀다. 마트에서 꼭 사려고 했던 두 가지 라면이 모두 없어서 슬펐다. 진짜 짬뽕은 찾아간 점포에는 없었고, 백세카레면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팔도비빔면을 사갖고 왔다.  운동을 가려고 했으나 몹시 피곤해 포기했다. 요즘은 점심을 먹고 오후만 되면 말할 수 없이 피곤해진다. 간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왼쪽 하복부도 여전히 불편감이 있다. 대학원 과제를 오늘은 하지 못해 그걸 할 생각이었으나, 결국 일기를 먼저 쓰고 있다.

[찬감다행] 20190509

1. 귀찮지만 스스로를 위해 병원에 다녀온 것을 칭 찬 해. 2. 피곤한데도 열심히 수업을 들어보려 애쓰는 귀여운 아이들에게 감 사해. 3. 일단 큰 질병이 있는 게 아니라고 하니 정말로 큰 다 행이야. 4.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행 복하고 충만한 느낌이야. 5. 다정한 마음과 눈빛과 말로 내게 와서 행복을 주는 아이들, 이름을 잊은 졸업생인데도 예전의 좋은 기억들을 말해주는 아이들에게 감 사해.

20190509

한밤중에 또 깼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었는데, 처음엔 윗집의 대화 소리인 줄 알았다가 가만 들어보니 쌍방에서 오가는 게 아닌 다소 속도감 있고 목소리에 힘이 실린 일방적인 독백이었다. 생각해보니 지난 번 낮에도 그런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났는데, 그 때는 그 소리가 인터넷 강의 소리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가 하면서 벽에 귀를 대보았다. 간간이 단어가 들리기도 해서 어떤 분야에 관한 얘기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강의 소리가 아닌 유튜브 같은 콘텐츠로 추측이 되었고 구체적으로는 렌즈 등의 얘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는 카메라 리뷰라든가 언박싱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근데 소리가 너무 힘있고 울려서 영상을 재생시킨 게 아니라 직접 촬영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그 시간이 새벽 2시 전후였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내가 그동안 세상모르고 자느라 알지 못했던 것인지, 이따금씩만 소리를 내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앞으로도 타의에 의한 불면의 밤이 잦아질까봐 약간은 두렵다. 오후에 아이들의 외부봉사활동 때문에 학교가 텅 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꽤나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담임이 아닌데도 아이들로 가득찬 학교는 약간 부담스러운가보다. 시험문제도 내고 수업자료도 모두 세팅해 놓을 요량이었으나, 어제 밤부터 골반과 허리 부근에 불쾌한 통증이 느껴져서 아무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듯해 부득불 병조퇴를 달고 나왔다. 다행히 걱정했던 자궁근종이나 자궁내막 관련 질환은 아니었고, 혹시 몰라서 균 검사와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했다. 내진, 내시경 등을 했더니 진료비가 9만원에 육박. 결과가 무사해 가벼워졌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이렇게 돈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이라니... 결국 오늘 이 시간까지도 대학원 과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일의 우선순위가 있는 법인데, 오늘 괜히 원안 출제에 마음이 쏠려 버리고 만 것이다. 벌충하는 의미로 조금 늦게 자더라도 스타트는 끊어놓아야 겠다는 생각이다.

[찬감다행]20190508

1. 하루를 잘 살아낸 나를 칭 찬 해. 2. 녹록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워내신 부모님께 감 사해. 3. 변형되어 회복되지 않던 쌍꺼풀 라인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어서 참 다 행. 4. 출근길 나뭇잎 사이로 문득 쏟아내려오는 따사로운 봄햇빛이 행 복해. 5. 소진된 자아를 감지하고 회복을 도모할 수 있음을 다 행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해.

20190508

대大권태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를 좀 내버려두고 쉬게 해주면서, 앞으로 직업 환경과 개인적인 영역에서 어떤 패턴의 생활을 해야 소진을 피할 수 있을지 현명한 방법을 탐색하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난 7년 간의 학교 생활에서 지나치게 애써서 그야말로 '불태웠고', 그보다 더더 긴 30여 년의 시간 속에서는 때로는 부모에게 인정받으려, 때로는 내게 주어진 환경을 부정하거나 극복하려, 혹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너무나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다그쳐왔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그 사실을 느끼고 깨달았으니 휴식을 주고 껴안아 품어주고 다독여주며 치유하면 된다.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햇살처럼 따뜻하게. 어버이날을 맞이해 이틀 만에 다시 본가를 방문했다. 지난 주만 해도 한없이 얇아진 주머니 사정 때문에 너무 적은 용돈을 드리게 된 상황이 죄스러워 어버이날이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보니 선물이나 용돈이 어떻든 간에 편안히 맞아주는 부모님과 가족들이어서 다행스러웠다. 독립의 가장 큰 이점은 가족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보다 느긋하고 여유 있는 상태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가끔씩만 만나게 되니 싸울 일이 없고 애틋함이 커지고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피로의 누적 탓인지 본격적으로 노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부쩍 피로를 많이 느낀다. 견딜 수 없이 피곤하고,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가 조금씩 늘 아프다. 최근 며칠은 갑자기 흐트러지고 무너진 쌍꺼풀 라인이 다시 돌아오지 않아 꽤 걱정을 했다. 본가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거의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지금도 이렇게 몸이 늙어가는 게 서러운데 앞으로 죽는 날까지 얼마나 더 서러움이 쌓여갈지, 참 인생은 견디고 감내해야 할 ...

[찬감다행]20190507

1. 아침에 교문지도를 하며 J부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도 못하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려보니 이만큼 성장하고 변화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나의 인생이 문득 기특해 열심히 살아온 걸 칭 찬 해. 2. 신규때에 P부장님처럼 존경스럽고 좋은 선배교사를 만나 지금까지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가끔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 사합니다. 3. 긴 연휴 끝의 수업이라 잘 할 수 있을지 약간 부담과 걱정이 있었는데, 나름대로는 무난하게 수업을 마쳐서 다 행! 4. 모임 중에 엄마가 전화해서 연락이 없어서 걱정되어 전화했다고 말하니 무언가 애틋하게 느껴지며 순간 행 복했음 :) 5. 권태와 슬럼프에 빠져 지쳐있는 스스로를 잘 살피고 휴식을 주려는 생각도 하는 자신이 기특해 칭 찬 해주고 싶다, 굿이야! 멋져! 잘하고 있숴!

20190507

긴 연휴가 끝났다. 4일의 휴가 기간 동안 여러 계획을 세워두었는데, 건강검진만이 온전히 실행에 성공했고, 산부인과 검진과 목욕가기, 푸셩이 만나기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해내지 못했으며, 운동은 절반만 했다. 본가에 가 있는 3일 반의 시간 중에 이틀은 거의 누워지내며 먹고자고 먹고자고를 반복했다.  어찌나 무위도식했는지, 오죽하면 오른쪽 눈의 쌍꺼풀 라인이 무너지고 서너개의 짙은 줄이 생겼다. 독립 3주차에 접어든 시점에 본가에 가보니 역시나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가에 가면 한없이 늘어지고 배고프지 않아도 끊임없이 뭔가를 먹게 되는데, 이건 긴장이 느슨해지고 이완되어 편안히 휴식을 취한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뭔가 공허감을 더 느끼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집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으나, 집에 가보아도 딱히 길게 나눌 얘기가 별로 없고 그나마 나-엄마 혹은 나-아빠 간의 대화가 이루어질 뿐 나-엄마-아빠 삼자가 원활히 오가는 대화란 건 전무하다. 요즘 온갖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지겨운 '인생권태기'이기 때문에 본가에서의 그런 모습이 더더욱 우울하고 공허하게 인식되어 울적했다. H의 툭툭 던져오는 발랄한 질문들이 -속좁게도- 철없는 부잣집 공주님처럼만 느껴져 답하기 싫어졌다. 예를 들어 본가에 가니 좋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속으로 울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독립해 나온 집에서도 따뜻함이나 충만함을 느낄 수 없고,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가더라도 소속감이나 포근함을 느끼지 못해, 어디에서나 이방인 신세인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부모와 내게 주어진 세계를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니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애쓰며 산다. 내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지어나가보려고 독립해 나온 이 곳에서 또다른 외로움과 공허, 고독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것 역시 내게 주어진 과제이자 숙명이라 생각하고 내 일상과 잘 섞고 배합해 예쁘게 빚어보려 한다. 연휴 끝의 출근이 괴로웠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세 시간 뿐이었던 화요일 수업...

[찬감다행] 20190502

1. 정보공시, 수련활동 잔류학생 지도계획 등 밀려있던 업무를 차근 차근 잘 해낸 나를 칭 찬 해. 2. 집들이에 온다고 과분한 선물을 준비해 온 쌤들과 그것보다 더 애정하게 되는 정성 어린 손편지에 감 사해. 3. 나름 귀하게 자란 쌤들이 누추한 집을 보고 좀 불편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좋다고 말해주고 나름대로 편안하게 있다가 간 것 같아 참 다 행이야. 4. 재작년 졸업생 M양이 정말로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 안부를 물었는데, 잊지 않고 연락해주는 학생들이 있어서 행 복해. 5. 영상수업이 거의 마무리되고 오늘 오랜만에 교과서 수업을 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무난하게 수업이 이루어져서 다 행이야.

20190502

학교쌤 세 명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나이로 봐도, 유일하게 비담임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봐도, 내가 그들과 완전하게 함께 어울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늘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게다가 직장 동료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복적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밌고 무탈했던 집들이를 마무리하니 피곤하고 역시나 또 공허한 마음도 느껴진다. 내일은 대만 친구 푸셩이를 만날 것 같다.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가끔이나마 SNS상으로 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다정한 동생이 타국에 왔고 그 곳에 내가 있는데, 부담스럽다(경제적으로, 언어적으로)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 일백프로 일만프로 흡족하고 기꺼운 것은 아닌 만남과 모임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만남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사의 여파로 겪는 일시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과, 환경의 변화와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치고 긴장도 되고 있는 정서 상태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음 주에 있을 P부장님, K쌤, K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이 좀 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길 일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 돈을 융통해 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마음이 이래 저래 좋지가 않다.

[찬감다행] 20190501

1. 출근하자마자 믹스커피 마시던 걸 고치고 싶었는데, 오늘 잘 참아낸 걸 칭 찬 해. 언젠가는 믹스 커피를 한 잔도 안마시는 날들이 많아질 거라고 믿어. 2. 학교에 S교무행정사 쌤처럼 유능하고 적극적이고 마음 넓은 분이 있어서 업무를 수월하게 할 수 있음이 너무 감 사해. 3. L과학정보부장님의 자녀분이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큰 불행을 지나오신 그 분에게 또 다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올까봐 너무나 불안하고 걱정했는데, 크게 다친 것은 아니라고 하니 정말로 너무나 너무나 다 행이야 ㅜㅜ 4. 임준걸의 멋진 목소리로 좋은 노래를 들을 때 행 복감에 젖어. 5. 배고플 때 교무실 냉장고에 요기할 수 있는 맛있는 것들이 있어서 다 행이고 감 사해.

20190501

5월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4월은 늘 뜻하지 않게 잔인했고 미칠 것 같은 분홍빛과 세계를 삼킬 것 같은 회색이 뒤섞여 묘한 불안정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다. 월요일의 상담 이후로 (사실 그 전에도 이따금)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대상들은 왜 모두 남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멋지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여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교감이라든가, 학창시절의 여러 선생님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대상까지는 결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을 대리하고 위안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업도 영상으로 대체한 주제에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방과후수업도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의 집들이를 위해 청소할 일도 문득 귀찮게 느껴졌지만, 힘을 내어 오늘도 내 일상을 열심히 마무리했다. 언젠가 이 공간과 이 공간 속에 혼자 있는 나의 일상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면, 충분히 이완하고 늘어지는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