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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의 게시물 표시

20170731

급작스럽게 연애를 시작(맞지?)하게 된 지 한 달이 되었다. 소개팅 후 두 번째 만남에서 달달한 막걸리와 청춘들의 시끌벅적 수다 속의 묘한 '그 날의 분위기'에 휘둘린 탓인지, 서로 약간 혀가 꼬인 채로 말을 놓았고 술집의 영업시간이 끝나 반강제로 가게를 나서면서 손을 잡았다. 보잘 것 없는 실내포차에서의 2차와 간신히 의식을 붙잡고 동트기를 기다렸던 탐앤탐스에서의 3차를 거쳐 택시를 기다리면서는 입까지 맞췄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이다보니 그 다음 날부터 설레고 좋기보다는 괴롭고 불안했다. 알코올에 의해 벌어진 일일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며 일요일 오전을 흘러보냈지만, 다행스럽게도(?) 어찌어찌 한 달 간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H와의 이런 연애에 대해 생각해보면 '모르겠다'. 그는 꽤 수려한 외모(최근엔 좀 달리 보이기도 한다;;)와 건장한 체격을 갖춰 뭇여성들이 좋아할 만하지만, 결코 내가 좋아하고 꿈꿔오던 타입은 아니다. 체육과라고 해서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가 학업이나 지식 분야에 있어서는 다소 부족한 건 사실이다. 나는 내가 sapiosexual이라고 확신한다.  지적이고, 섬세하고, 의식 있으며,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갖춘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파악한 H는 단순하고, 지식적으로 무지하고, 나와 취미와 취향 게다가 정치적 성향까지도 많이 다르다. 그런데 나는 왜 여지껏 그토록 수많은 소개팅남 및 다가왔던 남자들을 다 거절하고 내쳤으면서도, 이런 남자를 만나게 된걸까. 내가 추측할 수 있는 원인은 내가 상반기에 너무 힘들었다는 거다. 엄마 암 발병, 외삼촌이 돌아가신 일, 집 매매와 전세계약 등으로 경제적 심리적으로 시달린 일, 아빠의 공황장애 발작과 그에 따른 실직, 전교에서 제일 힘든 우리반, 무능한 부장 밑에서 수학여행 업무를 거의 혼자 도맡다시피 했던 일... 이 중에 많은 부분은 여전히 미해결과제로 남아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이다지도 힘겹고 외로운 와중에 옆에 있을 누군가가 너...

20170521

잊지 못할 충격의 저녁이다. 엄마의 암진단 이후로 장 보는 일은 거의 (자발적으로) 내 일이 되었는데, 품목마다 구입해야 하는 장소가 조금씩 달라 (채소는 자연xx이나 한x림, 가공품은 대형마트, 과일은 단골집인 덕x네 과일가게...) 오늘처럼 살 물건이 아주 많은 날에는 혼자 가기가 좀 난처하다. 4월부터 거의 모든 주말엔 언니네 집에서 지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오늘도 언니의 차를 타고 함께 장을 봤다. 평소에 전화연락도 그렇게 꺼려했던 '피곤한' 언니와 비자발적이지만 연락과 만남이 잦아진 후로, 내가 피곤해하던 예의 그 수다스러움과 호들갑, 부족한 경제관념과 비합리적인 소비형태를 다시금 마주칠 일도 많아졌다. 현재 엄마의 경제활동이 중지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나에게는 '가족 부양'의 책임이 늘어난 상태이다.  엄마의 발병 이전에도 빠듯하고 부족한 살림이었는데, 수입이 줄었고, 치료와 보양 등을 위한 지출이 늘어났다. 최악의 경우 두 분 모두 경제활동을 못하게 되는 상황도 곧 다가올 수 있기에, 난 결국 유모차보다 휠체어를 먼저 끌게 되는 것인가 하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수용하고 수긍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니는 모든 것을 쉽게 말한다. 유기농이 아닌 채소를 구입하는 일을 크게 만류하고, 생전 집에서 사먹어 본 일이 없는 체리나 블루베리가 집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단도리를 한다. 월 20만원씩 생활비를 내다가 이젠 월급의 대부분을 가정 경제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써야 할 지도 모르는 나에게 자신도 월 15만원을 내겠노라고 도무지 현실성 없고 신뢰롭지 못한 말을 쉽게도 던진다. 내가 많이 힘들고 우울할테니 받아왔던 심리상담을 꾸준히 받으라고 '무료로' 말한다. 피부가 나빠졌다는 나의 한탄에 요즘은 많이 싸졌으니 피부과에 다니라고 '공짜로' 인심을 쓴다. 이런 사소한 언행들이 내게는 무척이나 스트레스였다. 무슨 일로 부모님 ...

20170429

꿈에 그가 나왔다. 무척 힘든 일이 있거나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울 때엔 그의 꿈을 꾼다. 그가 나오는 꿈은 늘 현실처럼 생생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지난 밤 꿈에 등장한 그는 여전히 내게 돌아오고 싶어했다.  날마다 일기쓰듯 'ㄱㅎ야~' 라고 시작되는 당부와 조언의 메모를 남겼다. 실제와는 다르게 그는 보다 꿋꿋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는 온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었던 내 유일한 연애상대였고,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교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므로, 슬슬 '난 후회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복잡하고 약간은 당혹스러운 아침. 토요일 수업을 하고 있는데, 작년 봄 까페에서 알게 되어 만나봤던 D여고 C선생에게 카톡이 왔다. 내 기억으로는 단 한 번만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연락도 끊어졌던 사람이었다. 만날 당시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칭찬을 퍼붓다가는, 연락의 내용이나 횟수가 시들하고 뜸해서 누군가 다른 사람을 만나나보다 하고 나도 대수롭지 않게 머릿속에사 지워버린 사람. 1년 여가 지난 이 시점에 느닷없이 연락을 해선 자신이 연락을 하지 못했던 상황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하니 당혹스럽게 시작된 하루가 더 당혹스러워진다. 이렇게 저렇게 떠나보낸 인연, 스쳐간 인연들. 내 인연은 어디에 있을까. 내 존재를 바닥까지, 아름답고 빛나는 이면의 축축하고 눅눅하고 어둡고 퀴퀴한 모습까지 편안하게 여과없이 고스란히 드러내게 하는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1. 열병을 앓듯 달떠서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심신을 가누기 힘들었던 청춘의 계절이 내게도 있었다. 2.최초의  -성숙하고 진실한 의미에서의- 열병은 고1때 H쌤을 향한 것이었다. 우리와 같이 프레시맨이 되어 신규교사로 온 세 명의 총각교사 중에서도 작문 H쌤과 윤리 J쌤 두 분을 두고 여고생들은 저들끼리 우리 쌤이 낫네 너네 쌤이 어쩌네 하며 서로 편이 갈려 날마다 자신이 신봉하는 쌤을 쫓아 우르르 몰려다녔다. 부잣집 막내 도련님마냥 곱상하고 어여쁜 윤리쌤과 달리 H쌤은 눈과 입술의 비대칭과 지나치게 발달한 선귥은 하관이 눈에 띄고, 누구라도 당장 호되고 냉정하게 비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 매서운, 스윗함이나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 타입의 쌤이었다. 작고도 평범한 일을 갖고 늘 반문하고 캐묻거나 비판해서 많은 아이들은 황당해하거나 당황해하거나 "왜 저래?"라는 듯한 다소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걸음은 느릿느릿 어깨가 굽어있었고 곧 땅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이 늘 땅을 응시하며 갇다가는 학생들이 인사라도 하면 친근한 '안녕'이 아니라 75도쯤 허리를 숙여 "안녕하십니까"라는 어색하고 거리감 느껴지게 하는 답례를 건네곤 했다. 자연히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 안에서 '작문파'는 기하급수적으로 자취를 감추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윤리파'로 노선을 선회했으나, H쌤에 대한 나의 동경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수업 시간에 던지는 작은 질문들,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하는 비유와 사례 속에 녹아 있는 인생의 상징과 철학들에 나는 매번 전율과 희열을 느꼈다. 당시에 학교 선생님과 여고생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감우성, 채림 주연의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었고, 이 분위기에 힘입어 아이들은 더더욱 윤리쌤에 대한 사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일쑤였는데, 어쩐지 나는 내가 품고 있는 그 깊디 깊고 크디...

20170314

Y를 만나 밥먹고 영화 보고 돌아온 밤, 마음이 헛헛하고 가난하다. 급기야 그 이튿날인 오늘 새벽엔 하염없이 떠올린다, D와 함께였던 그 세계를. 그 품에 나른한 단잠을 자고 포옹 속에 자주 위로 받았던. 원없이 땡깡 피우고 어리광 부리고 짜증낼 수 있었던, 조금은 안전했던 세계. 비록 그 세계도 영원할 수 없어서 곧 종말을 맞이했지만- 다시 구제불능의 염세주의자가 되고 만다. 그 세계는 과거가 되었고, 혹여 과거가 아니라 나의 현재였다고 해도 봄꽃처럼 짧디 짧았으리라. 속이 찢어질듯 쓰리고 아프다.

20170304

1. 어제는 새 학교 새 반 아이들과의 첫만남이 있었다. 일주일 같은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불금으로 시작되는 주말이기도 해서 퇴근 이후로는 가급적 학교 생각을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쑥 불쑥 잔걱정들이 떠오른다. 첫날부터 수다스러운 우리반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학생들 학업수준이 예상보다도 훨씬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수업해야 할까, H중에서 강전왔다는 아이가 우리반 D와 친하게 지내는 모양인데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학년부 체제에서 담임들끼리 합의하는 게 중요할 텐데 학급 활동은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 걸까, 아이들과 어느 정도까지 교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깜냥이 되는 사람인가.... 담임을 하면서 마음 편히 지내길 바란다는 것 자체가 허황된 꿈이겠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때가 얼른 다가오길 바랄 뿐. 2. 어젠 또 전임교 H중에 신규 발령난 동교과 Y쌤에게 연락이 왔다. 수업시수와 연구수업 문제를 놓고 K쌤과 마찰이 있다고 했다. K쌤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불끈 올라오는 분노인지 시기인지 원망인지 모를 미상의 감정이 떳떳하지 못하다. 이미 그 학교를 떠나 다른 곳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그 문제에 너무 깊이 말려들지 말자고 여러 번 되뇌였으나, 결국 또 얄미운 시누이처럼 속닥속닥 뒷담화에 대처방안까지 침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고 말았다. 이런 내 모습이 수치스럽다가도 한 편으로는 이다지도 날 것 그대로, 위선이나 가식 없이 -신데렐라 언니처럼 보이는 것을 감수해 가며- 내 감정을 누르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스스로를 토닥여주고 격려해주고 싶기도 한 것이다. 3. 오늘 아침, 치과에 간다는 내 말에 엄마는 예의 그, 초등학생 때 치아교정 때문에 생긴 입 주변의 주름 모양이 얼마나 보기 싫은지, 그래서 필러 시술이 내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설파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엄마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난 너에게 관심이 많고,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더 예쁘고 훌륭하...

20170228

1. 최근 며칠을 누워지냈다. to do list가 수첩에 빼곡하고 마음은 그만큼 무거운데도 도저히 뇌에서 의욕이 없다. 검푸른 기분으로 거실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 몇 날 며칠이고를 폐인처럼 보냈다. 새 학교에 가서 일할 계획도 상담하러 내방역에 가는 일도 모두 취소하고, 등록된 필라테스 수업을 마지막 횟수까지 모두 채운 후엔 피트니스 클럽에 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사지마저 안 갈 수는 없어서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켜 비비적 비비적 집을 나섰다. 한 시간 반을 누워 있는 동안 대개는 코를 골며 자는 모양인데 (원장님이 대체로 "피곤하셨나봐요, 너무 잘 자시던데?"라고 말하곤 하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잘 자는 걸 알 수 있는 신호는 코골이 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 오늘은 한 시간 반동안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에 시달리느라 단 1초도 자지 않았다. 2. 내가 이렇게까지 우울하거나 불안한 이유는 역시나 새 학교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서 너 차례 찾았던 새 학교의 모습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새로운 의지와 다짐으로 무장한 사람마저 우울하고 무기력해질만큼 음산하고 황폐한 분위기.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든지 '빈익빈부익부' 따위의 용어들을 떠올리게 된다. 교실 환경을 조금이나마 개선시켜주고 쾌적하게 만들어줘야 학교에 오기도 좋을텐데. 그 밖에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대거 내용을 변경하고 수정한 새 가정환경조사서 양식에서 삭제했던 동거여부란을 다시 넣어야 하나 하는 고민. 수업을 어느 정도 수준에 맞춰서 진행해야 할까 하는 걱정.  이제 투넘버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카톡은 되지 않을텐데, 그래도 괜찮을까 하는 갈등. 무엇보다도 당장 이번주 이틀이 고민이다. 3. 학교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보면 그 끝에서 부딪치는 건 결국 '나'라는 인간이다.  강한 자의식만큼 자존감이나 자기확신이 강하면 (남에게 불편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내 스스로 사는 데에는 훨씬 편할텐...

20170218

독립해 이사하고 나면 지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쓰는 일기장 같은 (텍스트 기반의)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아직 그 시기에 미치지 못했으나 다소 충동적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급히 블로그를 개설했다. 1. 새벽에 약 1년 만에 P에게서 카톡이 왔다. 당혹스럽긴 했으나, 이내 곧 담담해졌다. 내게 상처 혹은 오점으로 남은 P와의 일은 여전히 가끔씩 문득 떠오르지만, 이젠 털어낼 때도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 속에 잠에 들었다. 이젠 더 이상 그 의도를 읽으려 하지도 않고 그의 반응에 따라 속을 끓이는 것도 덜하다. 헛되고 옳지 않은(?) 기대가 사라졌기 때문이겠지. 2. 2주 후면 새 학교로 이동한다. 짐도 다 옮겨놓았고, 정리도 많이 해 놓았다. 많이 달라진 환경 속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것에 기대와 설렘, 두려움과 걱정을 함께 느낀다. 우스운 건 내가 아직도 기존의 학교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해동안 함께 일했던 동교과 K교사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것 같다. 왜 난 그에게 이다지도 옹졸하고 악덕한 마음을 품는 것일까. 합리화나 변명일 수 있겠으나, 단순히 빼어난 외모를 갖춘 또래 교사에 대한 시기나 질투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면접 과정에서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뭐랄까, 투명하지 못한 느낌. 타인을 관찰하는 시각이 유난히 날카로운 내 눈에 무언가 자꾸 걸리는 느낌. 합당한 경력과 자격을 갖춘 듯 교묘하게 뒷배 봐주는 관리자를 등에 업고 한 자리 차지하게 된 과정도 적잖이 불쾌했거니와, 연예인병에 걸린 듯 자신을 '이성'의 느낌으로 대하는 학생들 앞에서 교사로서 처신하기보다는 '여자'의 느낌으로 서는 듯한 태도도 용납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눈을 의심할 만큼 형편없는 수준으로 출제한 시험문제를 보고는 기겁을 했다. 총평을 하자면 교사가 안 어울리는, 연예인이나 하면 좋겠는 여자. 한 해 간의 악감정이 쌓이고 쌓인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