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20170304

1. 어제는 새 학교 새 반 아이들과의 첫만남이 있었다. 일주일 같은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불금으로 시작되는 주말이기도 해서 퇴근 이후로는 가급적 학교 생각을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쑥 불쑥 잔걱정들이 떠오른다. 첫날부터 수다스러운 우리반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학생들 학업수준이 예상보다도 훨씬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수업해야 할까, H중에서 강전왔다는 아이가 우리반 D와 친하게 지내는 모양인데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학년부 체제에서 담임들끼리 합의하는 게 중요할 텐데 학급 활동은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 걸까, 아이들과 어느 정도까지 교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깜냥이 되는 사람인가.... 담임을 하면서 마음 편히 지내길 바란다는 것 자체가 허황된 꿈이겠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때가 얼른 다가오길 바랄 뿐.

2. 어젠 또 전임교 H중에 신규 발령난 동교과 Y쌤에게 연락이 왔다. 수업시수와 연구수업 문제를 놓고 K쌤과 마찰이 있다고 했다. K쌤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불끈 올라오는 분노인지 시기인지 원망인지 모를 미상의 감정이 떳떳하지 못하다. 이미 그 학교를 떠나 다른 곳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그 문제에 너무 깊이 말려들지 말자고 여러 번 되뇌였으나, 결국 또 얄미운 시누이처럼 속닥속닥 뒷담화에 대처방안까지 침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고 말았다. 이런 내 모습이 수치스럽다가도 한 편으로는 이다지도 날 것 그대로, 위선이나 가식 없이 -신데렐라 언니처럼 보이는 것을 감수해 가며- 내 감정을 누르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스스로를 토닥여주고 격려해주고 싶기도 한 것이다.

3. 오늘 아침, 치과에 간다는 내 말에 엄마는 예의 그, 초등학생 때 치아교정 때문에 생긴 입 주변의 주름 모양이 얼마나 보기 싫은지, 그래서 필러 시술이 내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설파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엄마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난 너에게 관심이 많고,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더 예쁘고 훌륭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라는 느낌이 아니라, '넌 못났어, 넌 변해야 해, 넌 부족해, 넌 사랑받기엔 조금 부족해'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엄마가 본격적인 얘기를 하지 못하도록 열심히 막았다. 그런데도 우주 최강 프라이드, 세계 최고 고집쟁이인 엄마를 막지 못해-사실, '니가 그래봐야 엄마랑 같이 살 날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다고'란 말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매우 아프고 두려우면서도 매우 짜증이 나는 말이었다-, 결국엔 그 흔해 빠진 레퍼토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에 이어지는 내 항변 속에 예전의 상처들이 되살아났다. 불쑥 데려가 점 빼게 했던 일, 갑자기 강남 모처로 불러내 코 시술을 권했던 일, 잊을 만 하면 다시 시작되었던 외모에 대한 권유와 충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면, 그런 일들이 상처로 남지 않았겠고 날로 예뻐지는 자신에 만족했겠지만, 형편없이 낮은 자존감을 가진 나에게 그런 일들이란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것에 다름없다. 아무튼 항변 끝에 울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깊고 오래된 슬픔과 상처가 고스란히 눈물이 되어 멈추지 않고 흘렀다. 이 나이가 되어서 더이상 엄마를 탓하고 원망하지 않는데, 또 여러가지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엄마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울고야 말았다. 당황한 엄마는 단무지가 없어 조금 아쉬운 김밥을 열심히 만들어 내게 주었다. 김밥을 먹고 집을 나서는데 몸도 발도 마음도 무겁고 기분이 울적해졌다.

4. 어젠 J의 생일이었다. 3월 3일은 기억하기 좋은 날이기도 하고, 새 학기라 정신없는 시기에 생일을 맞이해야 하는 게 좀 딱하기도 해, 아니면 내 기억력이 특출해 늘 잊지 않고 떠올리게 된다. 여러 복잡한 심정이 되었던 탓인지, 1년 여만에 먼저 연락을 해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줄까 하는 고민을 꽤 진지하게 했고, 카톡창을 열어 자판에 손가락을 올려놓기까지 했으나, 그만 두었다. 포기한 것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 자존심이 상해서. 2) 혹시나 J에게 연인이 생겨 나와 연락이 재개된 후 곧 결혼이라도 할까봐(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 빼고 다 결혼하게 된다는 이상한 미신적 믿음이 자라나고 있다). 3)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어 두려워져서. 나보다 발령 선배인 J가 밟았던 과정을 두 해 늦게 뒤따라 가면서 종종 그 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지내고 있을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