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병을 앓듯 달떠서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심신을 가누기 힘들었던 청춘의 계절이 내게도 있었다. 2.최초의 -성숙하고 진실한 의미에서의- 열병은 고1때 H쌤을 향한 것이었다. 우리와 같이 프레시맨이 되어 신규교사로 온 세 명의 총각교사 중에서도 작문 H쌤과 윤리 J쌤 두 분을 두고 여고생들은 저들끼리 우리 쌤이 낫네 너네 쌤이 어쩌네 하며 서로 편이 갈려 날마다 자신이 신봉하는 쌤을 쫓아 우르르 몰려다녔다. 부잣집 막내 도련님마냥 곱상하고 어여쁜 윤리쌤과 달리 H쌤은 눈과 입술의 비대칭과 지나치게 발달한 선귥은 하관이 눈에 띄고, 누구라도 당장 호되고 냉정하게 비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 매서운, 스윗함이나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 타입의 쌤이었다. 작고도 평범한 일을 갖고 늘 반문하고 캐묻거나 비판해서 많은 아이들은 황당해하거나 당황해하거나 "왜 저래?"라는 듯한 다소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걸음은 느릿느릿 어깨가 굽어있었고 곧 땅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이 늘 땅을 응시하며 갇다가는 학생들이 인사라도 하면 친근한 '안녕'이 아니라 75도쯤 허리를 숙여 "안녕하십니까"라는 어색하고 거리감 느껴지게 하는 답례를 건네곤 했다. 자연히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 안에서 '작문파'는 기하급수적으로 자취를 감추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윤리파'로 노선을 선회했으나, H쌤에 대한 나의 동경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수업 시간에 던지는 작은 질문들,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하는 비유와 사례 속에 녹아 있는 인생의 상징과 철학들에 나는 매번 전율과 희열을 느꼈다. 당시에 학교 선생님과 여고생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감우성, 채림 주연의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었고, 이 분위기에 힘입어 아이들은 더더욱 윤리쌤에 대한 사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일쑤였는데, 어쩐지 나는 내가 품고 있는 그 깊디 깊고 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