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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19의 게시물 표시

20190701

1. 불쾌, 권태모양이다. , 무감, 체념... 요즘의 내 상태를 이런 단어들로 표현하면 될까. 2. 외가의 문제는 너무나 고질적이고 고약하다. 서로를 보기만 해도 자신의 상처가 떠올라 그런가, 평소엔 자기 삶의 영역에서 멀쩡한 사회인으로 잘 기능하다가도 원가족과 접촉하기만 하면 지나치게 히스테릭해지고 피해망상도 드러난다. 최근에도 엄마-할머니-둘째삼촌-외숙모 간의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그 일주일 전 쯤 외숙모가 느닷없이 내게 누군가를 소개받으라며 연락을 해왔고, 만남에 갈급해있던 나는 거절하기가 아쉬워 엄마와의 유례없는 긴 통화 끝에 절반의 허락(?)을 구한 후 외숙모의 제안을 수락했던 차였다. 1) 나는 나의 부모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버지로서도 어머니로서도 내가 원하는 부모상은 아니었다. 그건 다만 교양이나 사회적 지위나 경제상황에서의 불만족 때문이 아니라, 가치관과 인생관이 다른 데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더구나 내 부모는 애정 없이 결혼하여 살고 있는 사이이다. 다만 두 분 모두 무한 책임감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성실히 가정을 꾸려왔다. 2)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둘째 삼촌네 집에 놀러가면 좋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삼촌은 예민하고 괴팍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 부담스러운 사람이었지만 예쁘고 교양과 지성이 넘치면서도 상냥한 숙모가 좋았다. 내가 꿈꾸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해해주었고 그게 너무 거칠고 순진한 것이라 해도 그 상태에 서 있는 그 나이의 나 자체를 존중해주었다. 날카로운 삼촌도 숙모 앞에서는 좀 부드러운 모습이었고, 둘이 서로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 또 그 사랑을 바탕으로 쌓아온 시간들의 힘이 느껴졌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사촌동생 둘도 내 친언니보다 더 마음을 이끌었다. 꼬물꼬물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봐서이기도 했고, 동생으로서 받은 것 별로 없이 늘 치이기만 했던 나로서는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3) 엄마는 나의 엄마이면서 할머니의 딸이고 숙모의 시누이이다.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인데 엄마의 엄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