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충격의 저녁이다. 엄마의 암진단 이후로 장 보는 일은 거의 (자발적으로) 내 일이 되었는데, 품목마다 구입해야 하는 장소가 조금씩 달라 (채소는 자연xx이나 한x림, 가공품은 대형마트, 과일은 단골집인 덕x네 과일가게...) 오늘처럼 살 물건이 아주 많은 날에는 혼자 가기가 좀 난처하다. 4월부터 거의 모든 주말엔 언니네 집에서 지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오늘도 언니의 차를 타고 함께 장을 봤다. 평소에 전화연락도 그렇게 꺼려했던 '피곤한' 언니와 비자발적이지만 연락과 만남이 잦아진 후로, 내가 피곤해하던 예의 그 수다스러움과 호들갑, 부족한 경제관념과 비합리적인 소비형태를 다시금 마주칠 일도 많아졌다. 현재 엄마의 경제활동이 중지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나에게는 '가족 부양'의 책임이 늘어난 상태이다. 엄마의 발병 이전에도 빠듯하고 부족한 살림이었는데, 수입이 줄었고, 치료와 보양 등을 위한 지출이 늘어났다. 최악의 경우 두 분 모두 경제활동을 못하게 되는 상황도 곧 다가올 수 있기에, 난 결국 유모차보다 휠체어를 먼저 끌게 되는 것인가 하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수용하고 수긍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니는 모든 것을 쉽게 말한다. 유기농이 아닌 채소를 구입하는 일을 크게 만류하고, 생전 집에서 사먹어 본 일이 없는 체리나 블루베리가 집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단도리를 한다. 월 20만원씩 생활비를 내다가 이젠 월급의 대부분을 가정 경제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써야 할 지도 모르는 나에게 자신도 월 15만원을 내겠노라고 도무지 현실성 없고 신뢰롭지 못한 말을 쉽게도 던진다. 내가 많이 힘들고 우울할테니 받아왔던 심리상담을 꾸준히 받으라고 '무료로' 말한다. 피부가 나빠졌다는 나의 한탄에 요즘은 많이 싸졌으니 피부과에 다니라고 '공짜로' 인심을 쓴다. 이런 사소한 언행들이 내게는 무척이나 스트레스였다. 무슨 일로 부모님 ...